[서울=뉴스핌] 박준호 기자 = 일본인 주주들의 표심에 미묘한 기류 변화라도 포착된 걸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불구속 재판을 요구하며 보석을 신청했다. 자신의 해임안이 올라와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이달 말로 예정된 이번 정기주총은 신 회장의 부재 속에 처음으로 열린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도 재촉발됐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동생인 신 회장의 이사 해임안과 자신의 선임안을 제출했다.
◆ 신동주 4전5기 보단 '일본 경영진' 관리 시급해진 모양새
신 회장의 구속을 틈타 공세의 수위를 높이던 신 전 부회장 입장에선 이번 주총이 절호의 기회다. 한국에서 지배력을 잃은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는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 복귀뿐이다.
그러나 앞선 네 차례 표 대결에서 모두 패배한 신 전 부회장이 이번 다섯 번째 표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신 전 부회장과 번번이 대립각을 세웠던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이 단독 대표로 있는 데다, 일본 주주들도 신 회장의 법정 구속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이형석 기자> |
그간 신 회장의 우호세력이자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종업원지주회의 지지가 신 전 부회장으로 쏠릴 가능성도 적다. 오히려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취약해진 틈을 타 영향력이 커진 일본 경영진이 독자적 움직임을 취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롯데가 우려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신 회장이 직접 주총에 참석하려 하는 것도 일본 경영진의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자진 사퇴하면서 쓰쿠다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그만큼 한일 롯데 경영 전체에 일본인 경영진의 입김이 거세진 상태다. 롯데 비상경영위원회를 이끄는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쓰쿠다 사장 등과 수시로 교감하며 변함없는 지지를 당부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황 부회장이 지난 8일 투자설명회를 위해 일본 도쿄를 다녀온 직후, 신 회장 측은 법원에 보석을 청구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총을 목전에 둔 만큼, 황각규 부회장이 표 대결에 대비한 표심 단속 활동을 펼쳤을 것”이라면서 “이후 롯데 측의 행보에 미뤄볼 때 현지 일본 경영진 내에 심상치 않은 시그널을 포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 롯데 실질 지배세력, 일본 임직원 세력이 가져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사진=롯데홀딩스 홈페이지> |
일본 경영진은 롯데 지배구조를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일본 롯데홀딩스 최대주주는 신 전 부회장이 과반주주(50%+1주)로 있는 광윤사(28.14%)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은 일본 임직원 세력이 갖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종업원지주회 27.75%, 공영회 13.94%, 임원지주회 5.96% 등 일본 경영진의 영향력 아래 놓인 지분이 총 47.65%에 달한다. 의결권이 없는 LSI 지분(10.65%)를 제외하면 이들 지분만으로 의결권 과반을 넘기는 셈이다.
신 회장이 4.0%의 낮은 지분율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친(親) 신동빈’ 세력으로 분류되던 이들 일본 임직원 세력의 지지 덕분이다.
만약 이번 주총에서 일본 주주들이 신 회장의 통제권을 벗어나 독자노선을 선택한다면 한국 롯데마저 일본 경영진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자회사인 L1~L12 투자회사와 함께 호텔롯데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호텔롯데-롯데물산-롯데케미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고리가 여전한 상황에서, 일본 경영진이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를 매개로 롯데물산, 롯데케미칼 등 40개 계열사를 수직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 전체에 영향력이 강해진 일본인 경영진이 흔들림 없이 신동빈 회장을 지지할지 아니면 독자노선을 걸을 지가 불확실해진 상황”이라며, “신 회장이 보석을 청구하면서까지 이번 정기주총에 참석하려는 것도 최악의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진=이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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