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관부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및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 재판으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총 23번 진행됐다. 일본 사법부는 1심 판결에서 일본 정부의 일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금 지불을 판결했다. 일본 법정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일부 승소한 최초의 사례다.
영화 ‘허스토리’는 관부재판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메가폰을 잡은 민규동 감독은 6년 동안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에 맞선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들을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스크린에 펼쳤다.
영화 '허스토리' 스틸 [사진=NEW] |
지금까지 위안부 영화는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눈길’(2015), ‘귀향’(2016) 등의 작품이 끊임없이 나왔다. 하지만 ‘허스토리’와 이들 영화에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허스토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말한다. 23번의 재판을 따라가며 현재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한다.
비극을 전시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다. 민 감독은 피해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이미지로 재현하지 않았다. 늘 공분을 일으켰으나 덜어내기 힘들었던 장면들을 과감하게 삭제했다. 전개상 필요한 그때의 기록은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대체했다. 법정 영화 특유의 환호도 지웠다. 대신 아픔과 상처를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뜨거운 용기에 조금 더 집중했다.
생각보다 빠른 호흡은 장점이다. 늘어지는 장면이 없고 모든 연결이 매끄럽다. 역사적 무게로 쳐질 수 있는 분위기에 생기를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는 김선영(신사장 역)과 김희애(문정숙 역)의 공이 크다. 물론 넘치지 않게 선을 지킨 민 감독의 연출 역시 박수받아 마땅하다.
네 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김해숙(배정길), 예수정(박순녀 역), 문숙(서귀순 역), 이용녀(이옥주 역)의 열연은 ‘허스토리’를 끌고 가는 또 다른 힘이다. 영화는 한순간도 눈물을 강요하지 않지만, 이들의 절절한 연기는 몇 번이고 눈물을 훔치게 한다.
영화 '허스토리' 스틸 [사진=NEW] |
사실 누군가에게는 위안부 영화가 피로할 수 있다.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는 안될 역사다. 우리에게는 그날의 비극을 되새기고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책임이 있다. 더욱이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관부재판 이후 즉각 항소했고 2001년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서 패소했다. 그리고 2003년 일본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극중 신 사장은 문정숙에게 적당히 하라고, 왜 이렇게 모든 걸 다 걸고 하느냐고 묻는다. 문정숙은 말한다. “쪽팔려서 그런다, 내 혼자 잘 먹고 잘산 게 쪽팔려서”라고. 적어도 이들의 용기를 봤다면 우리, 잘 살지는 못해도 쪽팔리게 살아서는 안된다. 오는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