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경제가 벼랑 끝에 서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까지 걸고 고용 창출을 외치지만 고용지표는 악화일로다. 미국발 무역전쟁이 확산되면서 경제 버팀목인 수출도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그러나 정부는 일자리 생산주체인 기업에 활력을 주는 정책은 외면한 채 ‘소득주도성장’만 고집하고 있다. 경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른 정책을 펴야 문재인 정부가 힘을 받고, 한국경제도 살아난다. 이에 뉴스핌은 현장 르포와 전문가 진단을 통해 경제 회생의 길을 찾는 [이제는 경제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뉴스핌] 황선중 윤용민 김준희 기자 = "4대 보험까지 다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잖아요. 게다가 귀찮기까지 하고요."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대안책으로 올해초 고용지원금 격인 '일자리 안정자금'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여전히 거세다. 현실과 동떨어진 데다, 복잡한 신청절차 등은 지원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정작 지원이 절실한 자영업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서울 명동거리에 한 음식점(참고사진) / 이형석 기자 leehs@ |
◆ "현실과 괴리 큰 제도" 고개 젓는 자영업자들
일자리 안정자금은 월 임금 190만원 미만 노동자를 1개월 이상 고용한 사업주에게 월 최대 13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사업주의 부담을 덜기 위해 올해 도입됐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6월 중순까지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한 노동자(누적)는 208만 5195명이다. 지난해 정부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예상했던 인원인 236만명과 비교했을 때 약 88.1% 수준이다. 상당수의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폭탄'을 피하고자 신청했다는 분석이다.
실효성 논란 역시 여전하다. 자영업자들이 흔히 토로하는 불만은 신청해도 '실익'이 없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 한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 1~2명 정도를 고용한 영세 사업주가 13만원을 지원받겠다고 고용보험까지 가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현(38)씨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었지만,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4대 보험에 전부 가입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업주 입장에서도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도 전부 남는 게 없지 않겠느냐"며 "앞으로도 신청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박모(45)씨 역시 정책이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불만을 토해냈다. 박씨는 "PC방 운영하는데 4대 보험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생 출퇴근 카드를 만들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다"며 "고작 13만원 받자고 세무사한테 큰돈 주고 상담받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 그냥 안 하고 만다"고 답했다.
박씨는 그러면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좋은데, 백종원 같은 자영업자와 나 같은 자영업자를 똑같이 분류하는 게 과연 정당하냐"고 되물었다.
[이제는 경제다 시리즈]
2)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 "일자리와 복지에 과감히 투자"
4)野경제통 김종석 “최저임금 인상 대신 EITC로 물고기 잡는 법을”
10)기지개 켤때마다 반년씩 지나는데..일자리 터널에 갇힌 청춘
11)고용지원금으로는 해결 안 된다
12)일자리 놓고 세대간 갈등 심화
13)자영업자의 눈물..내수 위축 그대로 둘건가
14)'규제 만능주의'에 갇혀 몸살 앓는 유통산업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 '보험료·국가장학금' 고려해보니... 알바생들도 '글쎄'
한 푼이 아쉬운 시간제 근로자들 역시 일자리 안정자금이 달갑지만은 않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원칙적으로 고용사업주를 지원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근로자는 직접적으로 득 보는 게 없다. 오히려 보험료 탓에 월급만 줄어들 공산이 크다.
경기 성남의 한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대학생 이진영(22)씨는 "방학 기간에만 잠깐 일할건데 국민연금에 건강보험까지 굳이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기 안양에서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모(25)씨는 "국가장학금을 받으려면 소득을 최대한 숨겨야 하지 않느냐"며 신청을 꺼린다고 했다.
지원금을 두고 근로자와 사업자 간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중구에서 떡볶이집을 운영하는 최모(37)씨는 "알바생 한 명이 '자신의 이름을 등록해 13만원을 받았으면, 몫을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언쟁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며 "신청을 안 하는게 속 편하다"고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를 방문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접수를 시연하는 모습 <사진=기획재정부> |
◆ 홍보 동영상 있어도... 복잡한 신청절차는 여전히 '불만'
복잡한 신청절차 역시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단념케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신청을 위해서는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세부내역서 △일자리 안정자금 체크리스트 △개인정보 제공 및 활용 동의서 등을 작성해 해당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근로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취득 신고서 △고용보험 보험관계성립신고서까지 추가로 내야 한다. 자신뿐 아니라 근로자 개개인 신상까지 모두 적어내야 하니 번거로움은 곱절이 된다.
물론 온라인을 통해 신청서 작성을 돕는 동영상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번잡한 과정에 불편을 느끼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또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근로자의 경우에는 신청서를 매달 새로 제출해야 하는 점이나 신청서 제출 후 소요 시간이 한 달 넘게 걸리는 점 역시 대표적인 불만사항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정모(36)씨는 "인터넷에서 보니 서류 쓰는 게 해당 사항이 세 가지인가 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내 경우는 교습소로 등록돼 있어 파트타이머 한 명만 등록할 수 있다는데 너무 어렵게 해놨다"고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26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 관련 서울-세종간 영상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
◆ 전문가들 회의적 시선 "세금을 통한 방안은 해결책이 아닌 '진통제'에 불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항구적인 지원금 지급은 우리의 고용구조와 정부재정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한시적 지원금은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기보다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파산을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일정 소득 이하 계층인 빈민층이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며 "일자리 안정자금은 수혜 대상이 저소득층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런 식의 복지정책은 넌센스"라고 했다.
한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26일 노동 관련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정부는 시장과 긴밀히 소통하고 철저히 준비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비롯한 여러 정책이 잘 정착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