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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의 세상 엿보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건가

기사등록 : 2018-08-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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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경영참여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우려되는 이유

 [서울 = 뉴스핌] 이석중 에디터 = 국민연금이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원칙적으로 '경영참여'는 배제하겠다지만, '특별한 경우'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경영참여의 길을 터 놨다. 방점이 뒤에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가 내놓은 '최종보고서'에는 그룹의 금융계열사 뿐 아니라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5%로 제한토록 했다.  

불과 이틀새 주요 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만한 두 가지 조치들이 나왔다. 국민연금이 경영에 참여하는 길은 터 놓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그룹 오너들의 지배력은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다. 필요시 표 대결로도 그룹 오너들과 경쟁할만한 장치가 마련됐다.

여기에 집중투표제, 다중대표 소송제를 도입한다는 여당의 상법 개정안까지 처리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재벌개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완비된다. 정부는 재벌개혁이라지만, 재계는 재벌해체 의도로 받아들인다.

◆ 연금사회주의 우려 키우는 국민연금의 관치화

운용규모가 635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7월말 현재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이 99개에 달하고, 5% 이상 지분 보유 기업은 201개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의 7% 내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큰 손이다.

특히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지분이 9.47%로 10%에 육박하고 SK하이닉스 10%, 현대차 8.44%, LG전자 9.34% 등이다.

국민연금은 이들 투자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찬반을 결정하는 단순 의결권만 행사했으나 앞으로는 직접 대화 요구와 안건 제시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다.

우려되는 것은 이사 선임이나 위임장 대결 등을 통한 경영 참여다. 기금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영 참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특수한 상황은 기업이 주주 가치나 사회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주가치 훼손의 정도를 기금운용위가 판단하는 데다, '사회적 가치'라는 지극히 모호하고 자의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정권의 의도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게 문제다. 특히 국민 여론도 반영하겠다는 뜻이어서 연금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주주권 행사 및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항을 결정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독립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 측 인사를 배제하겠다지만 수탁자책임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 산하다. 복지부 장관이 요청하는 사안을 수탁자책임위가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이 위원회 간사다. 위원회가 정부 의도대로 끌려 갈 개연성이 크다.

얼마전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이 국민연금 기금관리본부장 인사에 개입했던 것처럼 정권이 또 다시 인사권 행사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가 주요 그룹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강제하거나,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삼성그룹이 20조원을 내놓으면..."이라는 발언의 속내처럼 그룹사들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풀도록 압박할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된다.

◆ 관치 연금과 국제 투기자본 사이에 낀 경영권

그룹 오너들로서는 경영권 방어가 발등의 불이 됐다.

공정거래법 최종보고서에는 지주회사 규제 강화, 해외 계열사 공시 강화,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순환출자 규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등이 포함됐다. 그룹 계열사들 간 연결고리를 끊어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오롯이 담겼다.

이중 공익법인 의결권 5% 제한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사유재산권 침해이며, 주주평등주의에도 어긋난다. 위헌 소지마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공익법인을 통한 그룹의 우회지배를 막겠다며 막무가내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 약화는 글로벌 투기 자본들의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점에서 걱정된다.

정부는 재벌 개혁을 위해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고 오너의 지배력 약화를 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라지만, 행동주의 펀드로 불리는 글로벌 투기 자본들은 조그만 허점만 보이면 경영권을 위협해 이익을 챙기는 기회로 삼는다.

이미 많은 경험이 있고, 큰 손해를 봤다.

글로벌 투기 자본이 한국을 사냥터로 생각한 것은 지난 1999년 3월부터다.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4개 외국계 펀드와 연합해 SK텔레콤 지분 9.85%를 확보했다. 계열사 지원 등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경영진 교체, 사외이사제 도입, 해외투자 시 주주동의 등을 요구했고 SK텔레콤은 사외이사수 확대, 배당금 상향 등 요구를 받아들였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원을 썼다. 타이거펀드는 주가가 오르자 지분을 매각해 63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2003년 4월에는 영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경영 공백이 생기자 SK 주식 14.99%를 사들여 2대 주주가 됐다. 소버린은 최태원 회장 퇴진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고, SK는 경영권 방어에 1조원 정도를 썼다. 소버린은 9000억원 이상의 주식매각 차익을 얻고는 한국을 떠났다.

2004년에는 영국의 헤르메스 펀드가 삼성물산 지분 5%를 사들인 뒤 인수합병(M&A) 의사를 밝혔지만 주가가 오르자 지분을 매각해 38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2006년에는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미국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이 KT&G를 상대로 경영권을 위협해 단기간에 1500억원을 벌었다.

최근에는 엘리엇이 등장했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6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했다. 2016년에는 삼성전자 지분 0.62%를 사들이고는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하고, 주주들에게 30조원의 특별배당을 실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선방안에 반대해 현대차의 장기경영전략 수립에 차질을 빚게 만들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작은 지분으로 국내 기업들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주요 기업룹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대부분 50%를 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52.49%, 현대차 53.71%, SK하이닉스 51.10%에 달한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작은 지분을 확보한 후 다른 외국의 기관 투자자들이나 연기금, 뮤추얼 펀드 등 다른 주주들을 동원해 경영권을 협박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국민연금을 내세운 정부와 외국계 투기 자본, 둘다 그룹 오너들에게는 경영권을 위협하는 적인 셈이다.

혹시라도 정부가 재벌 해체는 물론 오너들의 경영 배제를 꾀한다면 오너들은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투기자본이라는 악마의 손을 잡을지도 모른다.

이 상태에 이르면 기업들이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재벌개혁이 목적이라지만,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외국 경쟁기업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하거나, 외국자본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40여년 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어렵사리 축적한 경쟁력이고, 국가적 자본이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julyn11@newspi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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