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74)는 18세기 서구의 화려한 공연장과 오페라 하우스, 도서관 등을 소재로 작업한다. 그는 이와 같은 공간의 건축적 양식을 통해 사회가 나눈 계급 문화와 변천사를 보여준다.
Kukje Gallery Candida Hofer Elbphilharmonie Hamburg Herzog de Meuron Hamburg II |
국제갤러리는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 ‘깨달음의 공간(Spaces of Enlightenmnet)’을 지난달 26일 개최했다. 50여 년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간과 인간을 사유해 온 칸디다 회퍼의 작품 중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근대까지 촬영한 공연장, 도서관, 미술관 등 특정 기관의 공간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속 공간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동시에 모두 인간의 ‘깨달음(Enlightenment)’을 가능하게 한 장소다. 공간의 역할에 집중하는 이 작품에서는 계급이 분할된 근대사회에서 현대로 오면서 기하학적인 공간이 ‘인문학적 장소’로 바뀌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Kukje Gallery Candida Hofer Teatro Cervantes Buenos Aires I |
전시장은 뒤셀도르프 시립극장을 시작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공간을 담은 작품으로 구성된다. 계급에 따라 달랐던 자리 구성에서 탈근대화가 일어나면서 대중화된 기관의 모습으로 바뀐다.
이 공간의 다양한 건축 양식은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과거 명문가는 사유지에 개인 극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몽사상으로 시민들이 깨우침을 얻으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 극장이 나타났다. 이전 왕족과 귀족에게만 국한됐던 음악과 청중은 사라지고 공연의 대중화가 일어난 것이다. 칸디다가 포착한 공간에서 일련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귀족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박스석, 일반 청중이 서서 관람하던 파르테르(오늘날의 스톨석)의 구성과 비교해 이후 파르테르에 의자가 설치되고 나아가 공간의 계급적 분할이 사라지는 변화도 볼 수 있다.
Kukje Gallery Candida Hofer Teatro Olimpico Vicenza I |
칸디다는 낮은 지식수준을 가진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침을 주는 공간의 의미로 확장된 극장과 도서관, 미술관을 보여준다.
중세 수도원 내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내 복도에 놓인 작은 서가, 빌라 보르헤스, 에르미타주미술관과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등 작품 속 내부 공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에 머물고 스쳐 간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인문학적 장소로서의 역할을 획득했다.
장서와 미술품, 벽화 가구 등의 구성과 맥락으로 도서관과 미술관은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게 됐고 이는 곧 특권계층을 위한 공간에서 민주화된 문화의 장소로 거듭나 다양한 예술가와 역사학자, 철학자가 관객과 교류하는 공간으로 새 단장 됐다. 칸디다 회퍼는 이러한 과정에서 생긴 인식의 변화가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칸디다 회퍼 [사진=국제갤러리] |
칸디다는 공간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로 정의된다. 그는 사람을 배제하고 공간을 찍는다. 아울러 장소 자체에 깃든 자연광과 인공조명으로만 작업하며 일체의 추가 조명은 없다. 칸디다는 “사람을 배제하고 찍는 이유는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없을 때 공간 자체를 좀 더 풍부하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모든 것을 축적한 공간 그 자체에서 인간의 자취가 충분히 담겨있다는 의미다.
그는 신중하게 셔터를 누른다. 순간의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고 이를 고스란히 프레임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칸디다는 “매번 공간에 직접 방문해 직접 보고 사진을 찍는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 상태다. 이점이 가장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시간과 역사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의 초상이 전시된 칸디다 회퍼 개인전은 오는 26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