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지난 5월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역사에 페미니즘 광고 게재를 불허했다. 성·정치·종교·이념의 메시지가 담긴 ‘의견 광고’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광고를 내걸려 했던 숙명여대 중앙여성학동아리(SFA)는 즉각 반발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5일 KBS는 자사 교양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에서 여학생 출연자의 정답판에 적힌 페미니즘 문구를 모자이크 처리해 방송에 내보냈다. 곧바로 ‘사상 검열’ 논란이 일었다. KBS는 입장문을 내고 “첨예하게 엇갈리는 정치·종교·문화 이슈는 한쪽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할 수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해당 학생은 트위터를 통해 “‘동일 범죄, 동일 처벌’과 ‘낙태죄 폐지’를 써뒀는데 정치적 발언인 줄은 몰랐다”며 황당해 했다.
KBS '도전! 골든벨' 영상 갈무리 [사진=유튜브 캡처] |
미투(Metoo)로 비롯된 여성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가운데 한편에서는 ‘페미니즘 지우기’ 논란이 시끌시끌하다.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여기는 시각이 ‘사전 차단’이라는 극단적 조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금기어가 돼버린 페미니즘을 두고 청소년에게 유해하므로 막아야한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보수 학부모단체들은 이번 조치를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이들은 수업시간에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한 초등학교 교사를 검찰 고발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경자 전국학부모단체연합 공동대표는 “페미니즘 자체가 이념”이라며 “지하철 광고를 걸고 방송에 구호를 내보내는 것은 이념을 강요·확산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칠고 과격한 급진 페미니즘이 문제를 불렀다고 날을 세웠다. 워마드(Womad)로 대변되는 여성 우월주의 및 혐오 문화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시위에서 옷을 벗고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데 이를 보는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불필요한 남녀대립구도를 만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아이들에게 사상까지 주입하는 꼴”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공사와 공영방송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논의할 기회조차 막는 것은 인권 탄압으로까지 보인다"고 반박했다. 숙대를 졸업한 김모(26)씨는 "게시하려했던 광고 안을 전부 봤는데 과도한 문구는 없었다"며 "서울교통공사가 토론도 못하게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됐던 KBS ‘도전 !골든벨’ 시청자 게시판에도 비난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논란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페미니즘’은 점차 금기어가 돼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언론 매체가 페미니즘 관련 기고를 꺼려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관련 논평을 거부한 여성단체도 있다. 어떤 식으로라도 생각을 내비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이 반복되는 탓이다.
실제 몇몇 연예인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가 폭발하는 비난에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골든벨’서 용기를 냈던 여학생은 지금도 인신공격과 신상털기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3·8대학생공동행동이 직장·대학 내 성폭력 근절과 낙태죄 폐지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18.03.08 yooksa@newspim.com [사진=김학선 기자] |
이와 관련, 전문가는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성학 연구자인 건국대 모 교수는 “유해성으로 따지면 지하철 성형광고 등 더 심각한 문제가 많다”며 “사회적 합의까지 이르진 못하더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해야만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청소년이 보기에 과격하고 유해한 표현은 꼼꼼히 걸러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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