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다카하시 마사아키(高橋正明·73)는 도쿄 스가모(巣鴨)역 앞에서 개헌 반대 모임 'OLDs'의 활동을 하다 젊은이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아사히신문에 털어놨다.
대학 명예교수이자 OLDs 멤버인 그는 벌써 170일 넘게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서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젊은이의 서명은 1만명 중 1명 꼴"이라고 말했다.
OLDs는 일본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그룹으로, 60대가 주축이 된 모임이다. OLDs 멤버들이 젊었을 땐 전 세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지만 지금의 일본 젊은 세대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지난해 중의원(하원) 선거 출구조사에서 비례대표로 자민당을 선택한 사람은 60가 29%였지만, 20대는 47%였다.
사학스캔들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본 시위대의 모습. 초로의 시민들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일본의 청년층은 보수화되고 있는 것일까. 6일 아사히신문은 '안정도 변화도 미래상을 찾는 젊은이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일본 청년층이 생각하는 보수와 진보를 다뤘다.
최근 일본에선 청년층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의 차이라거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쿠슈인(学習院)대학교 2학년인 한 남학생은 "현 정부를 지지하는 게 곧 보수화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층이 야당을 선택하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일본 청년층은 성장기 때 민주당 정부와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세대다. 과거 민주당 정부와 비교하면 현 아베 정부엔 커다란 실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취업난이 해소됐기 때문에 정권 교체를 바랄 이유도 희박하다.
도쿄예술대학(東京学芸大) 3학년인 한 여학생은 스스로를 '리버럴'이라고 생각한다. LGBT(성소수자) 권리보호나 여성차별 철폐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녀가 지난해 총선에서 찍은 정당은 자민당이었다.
그녀의 70대 조부모는 자주 아시히신문 기사 스크랩을 보내주면서 현 정부는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려 한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그닥 와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물론 헌법 9조 개헌으로 일본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 (현 정부의) 공문서 조작이나 사학비리도 옹호할 수 없다"면서도 "우리 세대는 경제가 안정되길 바라기 때문에 소극적 지지로 여당을 고르게 된다"고 말했다.
◆ 日청년이 생각하는 '보수'와 '진보', 중년층과는 반대
하지만 젊은 세대가 단순히 '안정'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되레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면이 드러난다고 신문은 전한다.
엔도 마사히사(遠藤晶久) 와세다(早稲田)대학 준교수는 6년전 정치의식 조사를 진행하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젊은 세대에서만 어떤 '특이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조사 내용은 정당명을 제시한 후, 해당 정당은 '보수'와 '혁신' 사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위치를 정하라는 것이다. 검퓨터 화면을 통해 답변자가 어느 쪽에 시선을 보내는지 알 수 있다.
자민당은 보수, 사민당 등은 혁신(진보)정당이라는 것이 일본 정치의 '상식'이다. 하지만 해당 정당명을 봤을 때 답변자들의 시선은 보수와 혁신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학생들은 극우로 꼽히는 '일본유신의회'에 대해선 머뭇거림없이 '혁신'을 바라봤다. 진보성향의 공산당은 정반대로 '보수'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조사를 거듭하자 이 같은 성형은 일본의 20~40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엔도 교수는 이 결과가 젊은 세대의 '무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반대로 청년층에선 '혁신'이라는 단어를 '변화'나 '개혁'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풀이하며 "세대를 뛰어넘어 통용될 수 있는 정치용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6년 전 조사에서 자민당은 보수쪽으로 나타났지만 최근엔 중앙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엔도 교수는 "젊은 세대에 자민당이 '개혁 정당'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 신주쿠 교엔공원 꽃놀이에 나와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올해 4월 도쿄도 네리마(練馬)구 구청장선거에 입후보했던 다나카 마사유키(田中将介·25)는 학창 시절 국제 비영리기구(NGO) 활동으로 캄보디아에서 인신매매나 아동매춘을 막는 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반(反)아베' 시위나 야당의 모습에 오래 전부터 위화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에 시위를 보러 가기도 했지만 (야당에게선) 정부를 무너트린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이 없었다"며 "구호만 외치는 것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나카는 대학졸업후 대형 언론사 입사를 지망했지만 전부 떨어졌다. 이후 프리랜서 기자로 독립했지만 월수입이 1만엔이 채 되지 않는 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선거자금을 모으고 선거에 나섰다.
가두연설에 나설 때는 윗 세대들에게 야유를 받았고, 인터넷에선 "중학교 반장 선거가 더 진지하겠다"는 비난도 받았다. 선거결과 72세의 현직 구청장에는 못미쳤지만, 득표율은 10%를 넘겼다.
다나카는 말한다. "우리세대는 10년 뒤 미래조차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사회가 어떻게 나아갈지 불안함 밖에 가진 게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의 손으로 직접 바꿔야 합니다"
◆ "기댈 곳이 없다"는 청년들의 불안감
아사히신문은 이런 현상의 배경엔 자신들이 고립돼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진단한다. 헤이세이(平成·1989~2019) 시대에 접어들어 버블이 붕괴한 뒤 일본 기업은 신입 채용을 줄였다. 동시에 고이즈미(小泉純一郎) 전 총리는 규제완화를 통해 파견직과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늘렸다.
2007년 아사히신문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란 연재를 통해 당시 청년들을 인터뷰했을 때도 "사회도 회사도 믿을 수 없고, 우리 세대는 자기 자신밖에 기댈 곳이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본 내각부가 2013년 한미일 등 7개국 청년들의 의식조사를 진행했을 때도 '장래의 희망이 없다'는 응답은 일본이 38%로 가장 많았다.
청년들이 현 정부의 유지를 요구하는 건 이 같은 불안에서 기인한다. 동시에 불안하기 때문에 "바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일본 청년들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작가 다치바나 아키라(橘玲)는 올해 6월 '아사히 혐오 - 보다 좋은 세계를 위한 리버럴의 진화론'(아사히신서)을 출판했다. 해당 저서는 아사히신문이 대표하는 전후 민주주의를 사람들이 꺼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다치바나는 "리버럴(진보)은 본래 보다 좋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상이었지만, 일본에선 변화를 완고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세계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오랜기간 방황했던 헤이세이의 일본에서 비정규직 고용과 저출산 문제가 두드러졌다. 이에 직면한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리버럴은 되레 '수구'로 비춰지는 셈이다.
헤이세이 시대는 내년 4월 현 덴노(天皇·일왕)의 퇴임으로 막을 내린다. 신문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청년들의 시도도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전했다.
올해 5월 결성된 '청년정책추진의원연맹'이 대표적이다. 40세 이하 국회의원들이 결성한 이 연맹엔 자민당, 공산당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총 6당의 40여명의 의원이 참가했다.
청년의원연맹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무로하시 유키(室橋祐貴) 일본청년협의회 대표는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건 리버럴도 보수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한다. 청년의원연맹의 목표는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의 정책을 비롯한 '청년의 정치 참여 활성화'다.
신문은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기성세대엔 이해할 수 없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포스트 헤이세이 시대를 이끌어갈 청년세대와 정치적 입장으로 분단선을 긋지 말고 (생각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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