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검찰 재조사로 '김근태 고문 은폐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보기관의 '안보수사조정권'이 폐지돼야 한다는 권고가 나왔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김갑배 위원장)는 11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해당 사건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심의한 결과, "검찰이 고문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하고 이후에도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은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이던 고(故) 김근태 전 장관이 이른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뒤 이를 폭로했으나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고 고문경찰관들은 불기소 처분을 받은 내용이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
김 전 장관은 지난 1985년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강제연행돼 23일 간 고문을 당하고 이후 이를 폭로한 뒤 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이를 묵살하고 고문 경찰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등 관계기관과 대책회의를 거쳐 사건을 은폐하는 데 적극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검 진상조사단의 재조사 결과, 검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내버려두는 등 사실상 수사를 방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검찰이 당시 안기부와 치안본부 등 관계기관과의 대책회의를 통해 김 전 장관의 고문 폭로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등 사건 은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 등에서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단은 또 당시 안기부가 김 전 장관 연행 닷새 뒤인 9월 9일 수사 초기단계에서 이미 민청련 사건 처리 방향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홍보 계획까지 세워 놓았는데 검찰이 이같은 수사 처리방향을 그대로 시행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당시 검찰이 남영동 대공분실 현장검증이나 구속장소 감찰을 벌인 기록이 없고 당시 고문을 당했다는 여러 주장에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과거사위는 이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고문경찰관들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은 물론 김 전 장관을 전기고문한 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수사를 벌이지 않은 점 역시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검찰이 고문경찰관의 신원파악에 의지가 없어 결국 당시 공안분실 실장이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등의 신분이 10년이 지나서야 밝혀지는 등 사건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과거사위는 이에 대해 "검찰은 해당 사건에서 준사법기관으로서 수사를 주재하고 경찰의 불법 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경찰의 고문수사를 용인, 방조한 사실 및 고문을 은폐하는 데 검찰 권한을 남용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검찰이 '수사기관의 고문'이라는 반인권적인 중대 범죄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오히려 공안 경찰관들의 불법 체포와 감금을 경미하게 본 것은 수사 절차에서 적법수사 원칙과 인권보호라는 검찰의 기본적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던 것은 안기부가 이른바 '안보수사조정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며 "이른바 '안보수사' 또는 '공안사건' 수사를 다른 사건과 다르게 취급하고 정보기관이 그 수사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과거 권위주의정부 시대 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이에 대한 검찰의 인식 전환과 새로운 접근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특히 "기소 여부의 결정은 검찰권의 핵심적 내용인바, 정보기관이 검찰 공소권을 통제하는 규정은 상위법인 형사소송법에 저촉되고 이를 검찰이 용인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한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위 규정은 현행법에서 그대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어 이를 시급하게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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