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부 전직 최고위층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점차 깊어지는 모습이다.
3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일 김시철(53·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내부전산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검찰이 지난 29일 사실상 영장없이 위법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수사와 관련없는 법원 직원들의 이메일 일부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직 중이던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초까지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을 지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조작' 사건 파기환송심 사건을 맡았다.
검찰 등에 따르면 당시 사법부는 원 전 국장 사건 관련, 형사7부에 관한 동향 파악 문건 등 보고서 6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가 재판연구관과 주고받은 이메일 자료는 검찰이 이같은 정황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8.10.15 leehs@newspim.com |
검찰은 김 판사의 이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검찰 측 관계자는 같은 날 오후 "법관을 대상으로 하는 압수수색에서 절차를 어겼겠냐"고 반문하며 "당시 압수수색은 대법원 전산정보국과 협의해 이뤄진“ 절차에 따라 적법하고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압수수색 영장의 유효기간은 31일까지이고 일정 기간 해당 판사와 재판연구관 사이 주고받은 이메일에 대해서만 자료를 확보했다"며 "수사 관련성 여부는 1차적으로 수사기관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9일에는 최인석(61·16기) 울산지방법원장이 코트넷을 통해 "곳곳에서 압수 수색 남용에 대해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며 "법원은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고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남발하는 검찰의 수사 방식과 검찰 협조를 명목으로 영장을 발부해주던 법원 관행 모두를 꼬집은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현직 고위 법관들의 연이은 이같은 의견 표명은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장 구속직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에 험로를 예고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원이 사법농단 수사 방해범처럼 여겨지던 상황에서 임 전 차장 구속을 계기로 그동안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이 표면화된 것 같다"며 "법원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사법농단 수사와 재판뿐 아니라 다른 수사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결국 검찰"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이런 상황에서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 수사를 바탕으로 이르면 이번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등을 직접 불러 조사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