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시중은행을 어떻게 이길 거냐?" "국내에 없는 성공 모델을 무슨 수로 만드나?" "10년마다 돌아오는 차세대 시스템 구축도 한 번 맡으면 폭삭 늙는데 이런 작업을 어찌 계속하겠다는 것이냐?"
2016년 우리은행에서 케이뱅크로 둥지를 옮긴 이길민(33) ICT융합본부 플랫폼개발 매니저가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다. 스스로 '소심한 A형에 보수적인 은행원'이라는 이 매니저 역시 물음표를 안고 케이뱅크를 택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행 오픈부터 서비스 기획,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을 손수 하며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직급이나 은행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금융이라는 비전도 품게 됐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길민 케이뱅크 매니저. 2018.07.26 leehs@newspim.com |
◆ 신혼여행 미루고 오픈 준비
이 매니저가 케이뱅크에 합류한 것은 2016년 3월이다. 2012년 우리은행 부산역지점에서 시작해 본부 ICT지원센터 신사업팀, 핀테크사업부, 위비뱅크 기획태스크포스(TF), 해외진출TF 등 여러 신사업 부서를 거쳤지만 도전에 대한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은행 앱이나 웹사이트를 거치지 않고 페이스북에서 금융 서비스를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오픈 뱅킹을 하고 싶었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았어요. 자판기 근처에 가면 모바일로 음식의 신선도를 알려주고 결제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특허도 냈지만 비용 문제로 사업화하지 못했죠."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케이뱅크 주요 주주사인 우리은행에서 그를 KT로 파견해 케이뱅크 예비인가 준비를 지원하게 됐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대응 전략으로 추진했던 위비뱅크를 경험했다는 게 연결고리가 됐다.
예비인가 후에도 케이뱅크에 남기로 하면서 인연은 이어졌다. 파견 기간에 기존 은행과 다른 사업 모델이나 소통 방식을 경험하면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시중은행과 달리 IT 시스템을 전부 내재화했기 때문에 ICT본부를 거치지 않는 게 없었다. 당시 2016년 9월을 목표로 오픈을 준비하느라 그해 봄에 잡혀 있던 결혼식을 가을로 미룰 정도였다. 오픈을 앞두고 로그인 시스템이 먹통이 돼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일도 수두룩했다.
"9월 24일 토요일에 결혼식을 하고 바로 다음 날인 일요일에 출근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신혼여행 예약을 취소해서 수수료 88만원을 물었죠.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했지만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 "카뱅과 다른 길, 케뱅 자체를 플랫폼으로"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길민 케이뱅크 매니저. 2018.07.26 leehs@newspim.com |
이 매니저를 붙잡은 케이뱅크의 최대 강점은 수평적인 문화다. 대리-과장-팀장-본부장을 거쳐 보고가 올라가는 기존 조직과 달리 행장 앞에서도 직접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다. 전문성도 따라왔다. 은행 오픈 전 기초공사부터 다지다 보니 만능 해결사가 됐다.
"시중은행은 업무가 세분화돼 있습니다. 공인인증서 업무라고 하면 정책, 서버 운영, 서비스 기획 등으로 나눠지죠. 그러다 보니 맡은 일만 하고 다른 파트에는 굳이 관심을 갖거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아요. 반면 케이뱅크에선 여러 업무를 동시에 하니 깊이 있게 알 수 있더군요."
수평적인 문화를 발판 삼아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였다. 은행권에선 처음으로 스마트폰에 일회용 비밀번호생성기(OTP) 기능을 구현했다. 실물 OTP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돼 편의성이 높다. 지문, 홍채, 손바닥 정맥, 얼굴 인증으로 로그인과 상품 가입 및 해지 등이 가능한 바이오 인증도 그의 손을 거쳤다.
중장기 사업 아이디어도 서슴없이 제시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공동 계좌 관리,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숙박공유 본인확인 시스템 등 금융 안팎을 넘나드는 아이디어 뱅크다. 이 중에서 블록체인 기반 FDS는 특허를 받기도 했다.
은산 분리에 막혀 인력 확대나 사업 추진에 가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조바심은 내지 않는다. 케이뱅크보다 나중에 출발한 카카오뱅크에 비해 뒤처진다는 얘기를 들어도 웃어넘긴다. 카카오톡 플랫폼을 발판으로 출발한 카카오뱅크와 달리 케이뱅크는 은행 자체를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어서다.
"카뱅과 케뱅은 전략 자체가 다릅니다. 규제가 풀리고 오픈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가 정착되면 케뱅 자체가 강력한 플랫폼이 될 거예요.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얘기가 있죠? 은산 분리가 완화되면 케이뱅크가 준비 중인 것들이 빛을 발할 겁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