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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불붙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기사등록 : 2018-1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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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0.6%인 오키나와에 주일미군 절반이 주둔…사건사고도 잇따라
오키나와 주민 '불안·불편'에 본토는 '모르쇠'
中 견제하는 美·日 정부는 오키나와 기지 포기할 수 없어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지난 9월 30일 실시된 오키나와(沖縄)현 지사 선거의 쟁점은 '미군 기지'였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후텐마(普天間) 미군 비행장'의 헤노코(辺野古) 이전 계획과 이에 반발하는 다수의 주민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의 여신은 '이전 반대파'를 향했다.

야권의 지원을 받은 다마키 데니(玉城デニー) 전 중의원 의원이 득표율 55.1%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특히 39만6632표라는 득표 수는 오키나와 지사 선거 사상 최다 득표 기록이기도 했다. 이 소식은 앞선 자민당 총재 선거서 3연임을 달성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겐 비보였다.

대체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기지 이전 계획에 왜 이렇게 반발하고 있는 것일까?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 지사 당선자가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日 영토 0.6% 오키나와에 주일미군 75%가 주둔

후텐마 미군 비행장의 이전 계획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미군 3명이 소학교(초등학교)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시간을 계기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후텐마 비행장 반환과 미군 기지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고, 주민들과 일본 중앙정부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당황한 미·일 정부는 협상에 나섰고, 오키나와 기지 부담을 줄이는 조치 중 하나로 오키나와 본섬 중앙인 기노완(宜野湾)시에 위치한 후텐마 비행장을 본섬 북부 헤노코로 5~7년 내 이전하고 기존 부지를 반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만으로는 주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선 미군 측이 용의자들을 일본 수사 당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한 후텐마 비행장 이전 합의에는 '오키나와현 내 이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현외 이전'을 원하는 주민들의 성에 차지 않은 건 당연했다.

주민들은 이전부터 미군 기지에 대한 부담을 오키나와현만 부담한다는 데 불만이 많았다.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 오키나와대학 명예교수에 따르면 오키나와의 면적은 일본의 0.6%에 지나지 않지만 주일 미군의 75%가 오키나와에 있다. 오키나와 섬 전체로 보면 면적의 18%가 미군 기지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일 미군이 아닌 주오키나와 미군으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셈이다.

미군 기지에 대한 부담은 주둔 미군에 의한 범죄 피해로도 이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1972년부터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이 일어난 1995년까지 미군 및 미 군무원이 저지른 범죄는 4716건이었다. 이 중 민간인이 살해당한 사건도 12건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불만과 불안을 호소해도 일본 정부와 본토는 모른 척할 뿐이었다. 미군으로 인한 안전 보장의 이익은 일본 전역이 누리지만 그 부담은 오키나와만 홀로 안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점점 커지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불만을 터뜨린 방아쇠였다. 한번 터진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미군 측과 세부 사항에 관한 협상을 계속해 2002년 계획안을 확정했다.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후텐마 미군 비행장의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하지만 2002년의 계획안은 결국 진행되지 못했다. 계기는 2004년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정에 해병대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사고였다. 추락 사고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다시 자극했고, 오키나와엔 재차 미군 반대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후텐마 비행장 반환 문제도 화두에 올랐다.

마침 미군이 전 세계에서 주둔군 재편을 실시하고 있었던 때라 미·일 양 정부는 다시금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물론 주민들의 주장인 '현외 이전'은 다뤄지지 않았다. 양국 정부는 헤노코로의 이전에 대해서 각 방안을 검토한 뒤 2006~2014년까지 대체시설을 건설해 이전한다는 로드맵을 확정했다.

잠시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망을 갖던 때도 있었다.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이전안을 재심의하겠다고 밝혔을 때다. 실제로 하토야마 정권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놓고 검토했으며, 현외 이전도 검토 방안에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일본 정부는 2010년 ‘현외 이전은 불가하다’고 밝히며 헤노코 이전을 결정했다.

◆ 주민의 피차별의식 극대화…'반대파 상징' 오나가의 등장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불안과 불만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본토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실제로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 기지의 '현외 이전'을 주장할 때면 본토에선 '비국민(非国民)'이라는 비난이 돌아왔다. 일본 정부는 암암리에 '주민 의견 무시, 정부 견해 우선'의 태도를 40여 년간 고수해 왔다. 이러니 오키나와 주민들의 본토에 대한 피차별의식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상징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2014년 오키나와현 지사에 당선된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다.

오나가 다케시는 '헤노코 매립 승인'을 계기로 기지이전 반대파의 상징이 됐다. 헤노코 이전은 연안부 매립을 통해 활주로 등 비행장 부지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2013년 12월 27일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당시 오키나와현 지사가 이 공사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2014년 1월 오키나와현 의회는 나카이마 지사의 매립 승인은 공약 위반이라는 이유로 사임을 요구하는 결의를 가결했다. 11월 지사 선거가 실시됐고, 이때 주민들의 의지를 등에 업은 오나가가 압도적인 표차로 나카이마를 누르고 당선됐다.

오나가 전 오키나와현 지사의 모습. 그가 손에 든 사진은 초등학교에 떨어진 미군 헬기 부품의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오나가 지사는 오키나와현 나하(那覇)시 출신으로 나하시 의회 의원과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을 거쳐 2000년부터 나하시장을 지냈다.

본래 자민당 소속이었지만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바람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며 반기를 들게 됐다. 특히 그는 자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미군 기지 반대'를 내걸면서도 중도 보수층에게 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인사였다. 그는 오키나와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반대파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취임 이듬해인 2015년 그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연안부 매립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승인 취소 결정을 내렸다. 아베 정부와 대놓고 각을 세운 것이다.

아베 정부 역시 가만히 있진 않았다. 정부는 최고재판소(대법원)에 승인 취소 무효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2017년 공사는 재개됐지만 오나가 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8년 7월 그는 헤노코 이전과 관련된 매립 승인을 다시 철회하겠다며 관련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오나가 전 지사의 별세 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헤노코 이전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오나가 지사는 그만큼 기지 이전 반대파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하지만 병마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 4월 췌장암 수술을 받은 그는 비밀리에 치료를 계속해 왔지만 7월 들어 급속하게 병세가 악화됐다. 8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오나가 지사를 지지해 오던 이전 반대파의 충격도 컸다.

아사히신문 역시 오나가 지사 별세 당시 "오나가 지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오나가 지사뿐"이라는 오키나와현 의회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며 "기지 이전 반대파가 심각한 상황에 놓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외 이전론'

지난 9월 30일 치러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오나가 지사의 후계자로 옹립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 의원은 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지사에 당선됐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현의 공사 승인 철회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다마키 지사는 오나가 지사를 따라 “헤노코에 새로운 기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순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은 중국이 있다. 중국에게 오키나와 인근 해역은 태평양 진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다. 중국은 1950년대 이후부터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태평양에 진출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중국은 오키나와 인근 해역을 노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국과 패권다툼을 벌이며, 팽창정책을 막으려는 미국과 일본으로서는 오키나와 기지를 포기할 수가 없다. 

아사히신문도 "오키나와현엔 승인 철회에 이어 내밀 '결정패'가 없다"며 "전국의 민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전 반대 측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 현에 조례 제정을 직접 청구하는 현민투표를 12월에 실시할 전망이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공사를 막는 결정타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로 10월 30일 일본 국토교통성은 오키나와현의 매설승인 철회의 효력을 집행정지했다. 방위성은 11월 1일 바로 공사재개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오키나와현이 가진 방안은 내년 봄까지 실시하기로 한 주민 투표 외엔 없다. 심지어 주민투표엔 강제력도 없다.

기지 외에도 다마키 지사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오키나와 진흥세제의 특례조치 기한은 내년까지인 데다, 아베 정부가 나카이마 히로카즈 전 지사(仲井眞弘多, 2006~2014년) 시절 했던 '연 3000억엔대 예산 확보' 약속도 2021년에 끝난다. 10년 단위로 갱신해 온 오키나와진흥계획도 같은 해 끝난다. 정부와 새로운 계획을 책정하기 위한 협의에 나서야하는 상황인 셈이다. 

 

kebj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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