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수진 기자 = 국내 정유업계가 연일 계속되는 국제유가 하락에 4분기 실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금처럼 유가가 갑자기 급락할 경우 비쌀 때 사놓은 원유의 가치가 떨어져 장부상 손실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업계에 트라우마로 남은 지난 2014년의 악몽이 4년 만에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었던 국제유가가 50달러 수준까지 급락하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2조원 가량의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았다.
정유4사 CI. [사진=각사] |
2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제유가 하락세가 이어지며 국내 업체들의 4분기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가하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 탓이다. 재고평가손익이란 미리 사둔 원유의 가격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장부상 손익으로, 원유 구입 시점과 해당 원유를 국내로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시점이 달라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산유국에서 원유를 구입해 국내로 들여오는 데는 1~2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이번처럼 유가가 급락하게 되면 도입중이거나 이미 탱크에 보관 중인 원유의 가치가 떨어진다. 이 경우 정유사들은 비싼 가격에 산 원유로 만든 제품을 싼 가격에 판매해야 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11월 말 기준 정유4사의 재고평가손실이 1조원 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볼 때 유가하락이 정유사 실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이번처럼 특정 분기에 급락하게 되면 고스란히 이번 분기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미 정유업계는 지난 2014년 유가급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로 크게 데인 경험이 있다. 당시 국제유가는 상반기 내내 배럴당 100달러선을 유지하다가 하반기 들어 가파르게 떨어지더니 연말쯤엔 50달러선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 때문에 총 2조원의 재고평가손실이 발생, 정유4사 중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이 적자전환의 쓴 맛을 봐야만 했다.
다만 유가하락이 무조건 정유사에 '독'은 아니다. 당장은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땐 유가하락으로 제품 소비가 늘어 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정제마진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팀장은 "유가가 떨어지면 소비가 증가해 정제마진이 좋은 흐름을 보이게 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소비 증가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이 정제마진 상승으로 이어져 긍정요인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4년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기록했지만 낮아진 유가로 인해 2015년과 2016년에 정제마진이 개선됐다"고 부연했다.
한편, 국내 업체들이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는 두바이유 가격은 10월 초 배럴당 84달러에서 지난 23일 65달러를 기록하는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20% 넘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WTI는 배럴당 76달러에서 50달러로 30% 이상 급락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배경으로는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 예외국 발생 △미국 내 원유 재고 증가 △미중간 무역분쟁 등으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 우려 심리 반영 등이 꼽힌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당분간 유가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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