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어느 곳보다 정의로워야 할 사법부에서 판사 뒷조사, 인사 불이익 정황 등 의혹 뭉치인 ‘양승태 사법농단’에 국민 신뢰가 처참히 무너지면서, 검찰이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조사 조차 못하고 해를 넘길지 주목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최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지난 2013년 작성한 ‘서기호 의원 소송 현황과 대응 방안’ 문건 등을 확보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이들 문건에는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이 판사 재임용 탈락 이후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제기한 탈락 취소 소송 관련, 대응 방안 등에 대한 시나리오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들에 대한 부당한 인사 불이익 조치가 실제로 이뤄진 정황이 재차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정황은 앞서 검찰이 확보한 ‘물의야기법관 인사조치’ 제목의 또 다른 문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법관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는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계기다. 지난 5월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여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등에서 작성된 각종 문건을 공개했다.
일제 강제징용 소송·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및 잔여재산 가압류 소송 등 각종 재판 개입 등 정황이 포함된 관련 문건 내용이 공개되면서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번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에 개입한 '국정농단'에 빗대어 '사법농단'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법관탄핵과 특별재판부 설치 논의도 나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6월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6개월의 검찰 수사에서 가장 큰 성과는 임종헌(59·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구속기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개별 사건에 대부분 개입한 임 전 차장의 혐의가 1차적으로 인정되면서 사법부의 민낯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지난달 구속기소된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동안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법관 인사 불이익 외에도 각종 재판 개입, 사법부 위상 강화를 위한 법관 비리 축소 및 은폐, 법원 예산 유용 등 광범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같은 광범위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단순히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그 윗선인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선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 양 전 대법원장 소환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불발로 양 전 대법원장을 조사할 만한 뾰족한 명분 없이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됐다. 법원은 이미 구속된 임 전 차장과 두 전직 대법관의 공모관계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검찰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바 있다.
검찰은 막바지 보강수사를 통해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고심하고 있다.
다만, 법원이 재차 영장을 기각할 경우 검찰 수사에 더 큰 차질이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들과는 별도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방안도 검찰 내부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사가 보다 장기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법원행정처장의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어떻게 엮을지 고심하는 단계일 것"이라며 "사실상 검찰 수사가 이미 장기전에 돌입했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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