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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잃은 나라②] "정치·경제 논리 아닌 '건강한 외주화' 만들어야"

기사등록 : 2018-12-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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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고 터질 때마다 정치, 경제 논리 속에서 안전은 소외
전문가 "이데올로기 논쟁은 곤란하다"
건강한 외주화 만들 생각해야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서 하청업체 직원 김모군이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당시 김군의 나이는 만 19세였다. 그는 열악한 업무환경에서 홀로 일하다 변을 당했다. 이번에 발생한 '태안화력 참사'와 비슷한 유형의 사고였다.

'구의역 참사' 직후 당시 국회에는 하청업체 근로자의 안전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 발의됐다.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업체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처벌법' 등도 대두됐다. 다만 그때뿐이었다.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산업안전 관련 법안은 총 40건 중 1건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법안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씨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찾아 김용균법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이날 소위원회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김용균법)을 다룰 예정이다. 2018.12.24 yooksa@newspim.com

산업안전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되는 이유는 정치·경제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당과 야당, 재계와 노동계의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처럼 법안 논의가 이뤄지다 보니 합의가 어렵다는 뜻이다.

◆ 정치·경제 논리에 밀려 쳇바퀴만

이번 참사로 다시 공론화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역시 합의가 진전되지 못한 채 쟁점을 놓고 격론만 오가는 모양새다. 개정안에는 △산재 사망 시 원청업체 책임자 처벌 강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유해·위험 작업 도급 금지 △노동자 범위 확대 등이 담겨 있다.

경영계는 사업주에 대한 과도한 처벌 규정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 본부장은 "근로자 사망할 경우 현행법상 사업주 처벌 기준이 외국과 비교해 최고 수준인 실정에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며 "실질적으로 산재예방에 도움이 되는 조치들은 미흡하다"고 했다.

반대로 노동계는 이마저도 불완전하다는 입장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사망 사고 발생과 관련해 정부가 입법을 예고했을 때는 하한형(1년 이상 징역)이 있었지만 국회엔 삭제된 채로 들어왔다"며 "처벌 조항의 현장 작동을 위해선 최소한 하한형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돼 원청의 산재 지표에 하청 근로자의 산재까지 포함하는 '원·하청 통합관리제도'가 처음 시행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태안화력은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환 의원, 이해식 대변인이 故김용균씨가 숨진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고 있다. 2018.12.21.

◆ 이데올로기 논쟁은 곤란··· '건강한 외주화' 만들 생각해야

전문가들은 여·야가 이데올로기 논쟁이 아닌 실질적인 산업안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주를 줬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난 것이 아니다. 안전관리 자체가 허술했다는 것이 본질"이라며 "안전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논의도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계속 나아가다 보면 결국 구의역 사고 때처럼 흐지부지 될 것"이라며 "구의역 사고도 처음엔 안전문제 이야기하다가 정규직화 논의로 이어지고,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이어지고 하니까 안전소홀 규명이라는 본질은 못 건드렸다"고 꼬집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 등 정규직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하청업체 직원들의 안전불감증, 위험하게 근무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구조 등 원인에 대한 진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외주화를 무조건 없애자는 말보다 우선은 건강한 외주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sunj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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