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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잃은 나라③] 기업처벌법, 죽음의 외주화 해법될 수 있을까

기사등록 : 2018-12-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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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청 처벌하라는 목소리 커져
기업처벌법 영국에선 이미 시행 중
원청 사업주 처벌 강화한 개정안 현재 국회 논의 중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최근 태안화력 참사를 계기로 하청 근로자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선진국처럼 산업재해 사고에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자들은 보통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처벌을 받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직접행위자 중심으로 처벌이 이뤄지다 보니 원청보다는 하청, 사업주보다는 현장 관리자 등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설령 인명피해가 발생해도 원청은 상대적으로 책임을 덜 지는 구조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무겁게 해야만 하청 근로자의 안전여건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 안전을 직접 챙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을'인 하청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갑’인 원청에 안전여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종시내 공공분양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 모습. <사진=뉴스핌DB>

◆ 일부 선진국에선 '기업처벌법' 시행하고 있어

현재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해 운용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산재 사망률은 법 시행 이후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2007년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만약 기업이 노동자에 대해 안전지침을 준수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통상 연간 매출액의 2.5~10%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심각한 위반 시에는 상한선 없이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이 법은 193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1987년 ‘엔터프라이즈호’ 전복 사고를 계기로 제정됐다. 당시 선원들은 안전대책 교육을 받지 않았고 항해 과정에서 안전지침을 지키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서 해당 법안 논의가 시작됐고 10년가량 사회적 논의를 거친 후 2008년 시행됐다.

영국의 토목회사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Cotswold Geotechnical)은 2011년 이 법에 따라 최초로 유죄 판결을 받고 벌금 38만5000파운드(당시 한화 6억7300만원)를 냈다. 이는 코츠월드 연매출액의 250%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코츠월드의 한 근로자는 시험광구에서 흙을 채취하던 중 지반침하가 발생해 질식사로 숨졌다.

영국 법원은 회사가 시험광구의 깊이를 고려하여 지지대를 설치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굴 속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누군가 한 사람은 지상에서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러한 안전수칙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코츠월드는 벌금이 과다하다며 항소했지만 결국 기각됐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민중당, 우리미래, 청년녹색당 청년대표들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추모하며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2018.12.14 kilroy023@newspim.com

◆ 영국 산재사망률, 우리보다 10배가량 낮아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재사망률은 2014년 기준 근로자 10만명 당 10.8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의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가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산재사망률은 같은 기준 1.6명이었다. EU에서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루마니아로 근로자 10만명에 7.1명 수준이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화제가 된 산업재해 사고를 보면 유달리 공기업이 많다"면서 "민간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임을 덜 지는 구조적 문제가 원인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이제 원청 역시 현장 안전에 신경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업자 불러서 일시키면 된다'는 마인드는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에서 성과가 발생하면 말단 직원들이 아닌 대표에게 공을 돌리는 것처럼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sunj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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