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경미한 교통사고 후 평소 안면이 있던 피해자가 크게 다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뒤 연락처 전달 등 구호행위 없이 현장을 벗어난 택시기사에 대해 대법원이 뺑소니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택시운전기사 A씨의 혐의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도주의 범의로써 사고 현장을 이탈해 사고를 낸 자가 누군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강원도 한 전통시장 인근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한 도로에서 택시를 운행하다 보행자 B씨의 팔을 해당 승용차의 사이드미러로 들이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평소 안면은 있었던 사이였다.
A씨는 창문을 내려 B씨와 짧게 말다툼을 한 뒤 연락처 전달이나 구호 행위없이 그대로 사고 현장을 벗어났고 B씨는 이에 경찰서에 A씨를 신고했다.
A씨는 그러나 “B씨가 ‘괜찮다’고 해서 현장을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맞섰다.
1심은 A씨 주장을 받아들여 공소 기각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승용차에서 내려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는지 여부를 적극 확인하거나 전화번호를 건네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잘못이 있기는 하나 상해 정도와 당시 이뤄졌던 대화 내용 등에 대한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오히려 피해자가 괜찮다고 했다가 사고 당일 저녁 충격 부위는 아파오는데 피고인으로부터 아무런 안부 연락도 없자 이에 화가 나 피고인이 도주했다고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20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18.11.20 kilroy023@newspim.com |
2심은 이같은 판결을 깨고 A씨에게 벌금 25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안면이 있었던 것은 피해자가 피고인을 특정하는 것이 다소 용이한 사정에 불과할 뿐, 인적사항을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인적사항을 알리지 않고 현장을 떠남으로써 사고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A씨가 사고를 내고 도주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어 “단지 사고 직후 피해자의 거동에 큰 불편이 없었고 외관 상처가 없었으며 피해 정도가 가벼운 것으로 판명됐다는 등 사유만으로 구호조치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대법은 원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의 경위와 내용, 상해 부위와 정도, 사고 후 정황,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도주의 범의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원심은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