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2016년 법조계를 흔든 ‘정운호 게이트’로 불거진 법조 비리는 ‘양승태 사법농단’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몇몇 판사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7일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최근 법원에 제출한 신광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겨 기소된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기록은 법원에서 외부로 새어나갔다.
2016년 9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뇌물 등 금품수수 혐의로 당시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를 기소했다. 현직 판사가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김 부장판사는 2014∼2015년 네이처리퍼블릭의 가짜 화장품 제조·유통 사범들을 엄벌해달라는 등 청탁과 함께 정 대표로부터 영국 자동차 브랜드인 랜드로버사의 레인지로버를 포함해 총 1억8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를 받았다.
검찰 기소에 앞서 2016년 4월, 양승태 대법원은 ‘법관 비리’ 은폐를 시도했다. 당시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현직 법관의 비리가 밝혀질 경우,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부의 위신 추락을 우려했다.
이를 위해 법원행정처는 처장 주재 실장 회의에서 법관 비리 발생 시 별도의 매뉴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응 매뉴얼에는 사법부 ‘위기’ 상황 발생 시, ‘면밀한 수사 상황 및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전략 수립’, ‘언론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기사거리 제공’ 등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해 묵념을 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당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법원 내부에 대한 검찰 수사 관련 대응책 마련에 필요하니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통해 검찰의 수사상황 및 방향 등을 확인해서 보고해 달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
임 차장 지시를 받은 신 부장판사는 관련 내용을 조의연·성창호 동법원 영장전담판사들에게 전달하면서, ‘수사기록 중 법관 관련 수사보고서, 조서 등 중요자료를 복사해달라’고 요구했다. 두 영장전담판사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신 부장판사와 조의연, 성창호 판사는 2016년 5~9월 서울중앙지법 자신의 사무실에서 수사기밀 및 영장재판 자료를 수집한 뒤, 총 10회에 걸쳐 위 내용들을 정리한 문건 파일 9개 및 수사보고서 사본 1부를 임 차장에게 보냈다.
조 판사와 성 판사는 지난해 11월 임 전 차장 기소에 앞서 8월께 공무설비밀누설죄 피의자로 입건되기도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 최근 전·현직 법관 1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법관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를 비롯해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등이다.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