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노딜’로 끝난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 방법론으로 내세운 단계적·동시적 구상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일괄타결식 비핵화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이에 북한은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미국과의 협상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초강수로 맞대응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마주 보고 달리던 북미가 이제 등을 돌리게 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만큼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커 당분간 냉각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사진= 로이터 뉴스핌] |
◆ 北 강경 입장 표명 왜?…"맞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
러시아 타스통신과 미국 AP통신 등에 따르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국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하거나 이러한 협상에 응할 의사가 없다”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 부상은 그러면서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탄도미사일 ‘모라토리엄(실험 유예)’ 결정을 지속할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 부상은 또한 "김 위원장이 향후 비핵화 협상의 지속 여부를 두고 공식적인 발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상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최근 잇따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요구, 일괄타결식 비핵화 방법론 등을 관철시키려 한데 따른 반박으로 풀이된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간 선전매체 등을 통해 직접적인 대미 비난 메시지를 자제하며 ‘수위 조절’을 해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비핵화 협상 판을 바로 뒤엎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미국이 정상회담 때부터 강하게 나오는데 계속 아무 말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 때 쯤이면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고, 북한으로서는 할 만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전문가는 “이른바 최고존엄 위상 자체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마디 한 것”이라며 “아울러 북한 군부 내부에 이질적인 목소리를 단속하면서 하나의 통합된 지휘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일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18.02.28. [사진=뉴스핌 로이터] |
◆ 임재천 "북·미 간 배팅 격차 너무 크다"…美 ‘강 대 강’ 반응 여부 주목
반대로 북한과 미국 간의 냉각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남북, 북미 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감지할 수 있는 ‘풍향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에 달렸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정말 대화의 판을 뒤엎을 거라면 이번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자기들의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떠보는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라고 진단했다.
문 센터장은 그러면서 “미국의 추가 반응을 보고 ‘도저히 협상해봐야 가능성이 없겠다’라는 판단이 든다면 대화의 문을 닫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임재천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지금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냉각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이라며 “현재 북미 간 배팅 격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어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해도 실익(대북제재 해제)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선다면 향후 전개될 상황은 좋게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문재인 정부 ‘중재자·촉진자’ 역할 주목…“물밑접촉에 힘 쏟을 것”
북미 간 접점 찾기가 속도를 못내고 있는 가운데, 결국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이 필요할 때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앞으로 청와대의 행동반경에 관심이 쏠린다.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통해 등 돌린 북미 사이를 다시 봉합해야 하는 긴급상황이기 때문이다.
윤도환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북미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정부의 강력한 중재 의지를 대변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도 “최 부상의 발언만으로 현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며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대북·대미 특사를 서둘러 가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대북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특사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다고도 했다. 특사를 가동해도 진전이 없을 경우 비핵화 협상의 출구가 막힌 채 다시 지난해 6.12 남북공동성명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서다.
대북특사단 서훈 국정원장(오른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9월 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특별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핌 DB] |
김 교수는 “지금은 (북미가 민감한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하기 보다는 ‘비밀특사’ 형식으로 가야 한다”며 “만나더라도 2차 남북정상회담 때처럼 ‘원샷딜’ 형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임 교수도 “냉각기에 들어가더라도 물밑협상이 있을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런 걸 매개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런 때는 오히려 물밑협상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현명하다”고 분석했다.
중재자·촉진자 역할은 한미 간의 공조를 바탕으로 한다는 기본 방침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통해 북측의 입장을 대변해준다는 오해가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센터장은 “북한의 비핵화가 시급하지만 정부로서는 북한의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소통을 통해 대화의 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과 개성 연락사무소 등을 통한 북한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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