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귀청을 울리는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북적이던 청춘들의 모습 역시 온데간데없었다. 바닥에는 초라한 담배꽁초와 빈 깡통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건물 입구 유리문에 붙어있는 클럽 안내문만이 이곳이 한때 서울에서 '잘 나갔던' 클럽이었음을 상징하고 있었다. 15일 자정쯤 찾은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아레나'의 모습이었다.
한 달 매출만 최소 50억원에 달한다고 알려진 '넘버원' 클럽 아레나가 수백억원대 탈세 논란에 휩싸이며 문을 닫은 시점은 지난 7일.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버닝썬 사태'의 여파였다. 아레나는 버닝썬의 이사였던 그룹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의 성접대 제공 장소로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클럽에서 성폭력과 탈세 등 범죄가 횡행했다는 증언도 줄줄이 터져나왔다. 결국 아레나는 '내부 수리'라는 이유로 영업을 잠정 중단했고, 클럽 관계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15일 탈세 의혹으로 운영을 중단한 서울 유명 클럽 아레나 입구. 2019.03.15. sunjay@newspim.com |
◆ 아레나 주변 상인 '속앓이'
주말 밤마다 1000여명의 젊은 남녀를 끌어모으던 대형 클럽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자 직격탄을 맞은 건 인근 상인들이다. 술 취한 청춘들이 주로 찾는 편의점·호프집·해장국집·러브호텔의 타격은 특히 더 하다. 아레나 입구에서 3m 거리의 편의점 근무자 김상호(27·가명) 씨는 "이곳은 아레나만 바라보고 장사하는 가게"라며 "아레나가 정상 운영할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야간 매출은 5분의1 수준으로 확 줄었다"고 설명했다.
아레나 인근 24시간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 매장에 놓인 20여개의 테이블에는 예닐곱의 손님만 한가로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평소 손님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던 광경이 익숙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겐 아직 이러한 한가로움이 낯설기만 하다. "구토하거나 난동 피우는 취객들이 없어지니 좋긴 좋지만 아무래도 매출 걱정이···."
한산해진 거리의 또 다른 특징은 우두커니 서 있는 택시다. 평소라면 부지런히 손님들을 실어날랐을 테지만 이날 택시는 도로 한편에서 하염없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멍하니 있는 동안 소모되는 연료가 아까운지 시동을 꺼놓은 택시도 있었다. 택시기사 유연종(64) 씨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 사라져 아예 다른 동네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레나 인근에 위치한 클럽 '바운드' 역시 문을 닫았다.
15일 각종 논란으로 운영을 중단한 서울 유명 클럽 버닝썬 입구. 2019.03.15. sunjay@newspim.com |
◆ 인근 클럽은 여전히 문전성시
대다수의 상인들은 "클럽의 흥망성쇠는 으레 있는 일"이라고 웃어넘겼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언젠가는 터질 것 같았던 게 드디어 터졌다"는 반응이다.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현태(59·가명) 씨는 "클럽이야 망하고 새로 생기는 게 일반적이라곤 하지만 비싼 권리금 내고 들어온 만큼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라고 한숨 쉬었다.
아레나와 버닝썬으로 대표되는 대형 클럽의 잇따른 몰락에 갈 길 잃은 젊은 남녀들은 다른 클럽으로 눈을 돌렸다. 실제로 같은 날 새벽 1시 강남역에 위치한 다른 A클럽은 입장을 기다리는 수십명의 손님들로 수선스러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들, 매력적인 이성을 물색하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 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차량 역시 거리에 즐비했다.
클럽의 인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는 해당 클럽의 테이블·룸 가격이다. 해당 A클럽의 테이블 가격은 최근 가파르게 치솟아 주말 기준 최소 120만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비딩(bidding·입찰) 제도로 결정돼 유동적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엔 더 비싸진다. 이날 클럽을 찾은 김모(25) 씨는 "아레나, 버닝썬이 문을 닫으니 사람들이 이 곳으로 대거 몰려들었다"며 "테이블 가격 역시 올라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그룹 빅뱅 멤버 승리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9.03.14 leehs@newspim.com |
이곳의 상인들은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다. 새벽 시간대에도 인기 주점 입구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도로에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A클럽 인근 한 편의점 근무자는 "물건을 훔쳐 가도 모를 정도로 손님이 많다"며 "매장이 큰 편이 아닌데도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서 일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시도때도 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겨울에도 아예 문을 활짝 열고 영업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사소한 폭행 사건은 시간이 지나며 한국 사회를 뒤덮는 최악의 클럽 스캔들로 커지고 있다. 젊음과 자유라는 명분 아래에서 청춘들은 방종했고 어른들은 방관했다. 그 후폭풍은 클럽 인근 상인들의 희비마저 가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수사의 중심에 선 '버닝썬' '아레나'를 제외하고 다른 클럽은 이에 아랑곳없이 팽팽 돌아갔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