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리한 교착국면에 빠진 가운데, 정부가 어떤 중재안을 내놓고 다시 가교를 이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핵화에 대한 북미 간 이견이 큰 상황에서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미국은 '일괄타결식'을,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협상 프로세스를 고집하는 상황이다.
북미 간 대화 분위기의 불씨가 꺼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다시 한번 긴박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비핵화 협상 조건으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 카드를 꺼내들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지난해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 앞마당에서 남북공동성언인 '판문점 선언'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스핌 DB] |
◆ '굿 이너프 딜·얼리 하베스트' 의미는 뭘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올 오어 낫싱'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 한번에 모든 핵무기·프로그램을 제거하는 일괄타결식 방식이 아니면 안된다는 협상의 룰은 적합하지 않다는 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낸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북한으로 하여금 포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합의부터 견인해내고, 그런 바탕 위에서 '스몰딜'(small deal·작은거래)을 '굿 이너프 딜'로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서는 한두 번의 연속적인 '얼리 하베스트'(early harvest·조기 수확)가 필요하다"며 "이런 조기 수확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 '굿 이너프 딜', '얼리 하베스트'는 생소한 표현이자 평소 잘 쓰이지 않는 외국어다. 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들도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 홍민 "구체적 비핵화 단계별 일정 잡고 남북미 3자 합의해야"
대북 전문가들은 '굿 이너프 딜'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가 비가역적(非可逆的·쉽게 변하지 않는 것)인 단계로 돌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남·북·미 3자간의 공통 기준을 바탕으로 몇 번의 '얼리 하베스트'를 주고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단계적 비핵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남·북·미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북미 간 포괄적 합의를 기초로 몇 차례의 '스몰딜'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최종적으로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은 지나치게 한 번에 확약을 받으려고 하는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제한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연구실장은 또 "접점을 찾으려면 북한의 비핵화가 비가역적으로 돌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남·북·미 3자간의 합의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홍 연구실장은 "구체적인 '오퍼레이셔널 데피니션'(operational definition·운영적 정의)에 대한 남·북·미 3자간의 정의가 없다면, 귀머거리 대화하듯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비핵화를 얘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포괄적 합의로써 전체 범주에 있는 것을 약속하되 시행 자체는 단계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연구실장은 특히 "미국도 무엇부터 해야 북한이 비가역적 수준으로 빨리 돌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것이고 북한도 이 정도면 핵능력에서 상당부분 상실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
◆ 美 "하노이 결렬, 北과 시기·순서배열 문제 때문"…문대통령 '중재·촉진자 역할' 가동
지난달 27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일괄타결식 방법론을 거듭 제시하고 있다.
지난 18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캔자스주 라디오방송인 KFDI와의 인터뷰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배경과 관련해 "시기와 순서배열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을 위한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은 진짜"라면서도 "북한의 검증된 비핵화가 먼저"라며 선(先) 비핵화 원칙을 다시 한번 내세웠다.
그는 그러면서 "순서배열을 올바르게, 그리고 (북미) 각각이 동의할 수 있고 남북 간 국경을 따라 조성된 긴장을 허물 수 있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인 일본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북미 단독회담이 끝난 뒤 두 정상을 포함해 북미는 확대 회담에 돌입했다. 북측은 김영철 노동당제1위원장과 리용호외무상이 확대 회담에 참여했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보좌관이 참여했다. [사진=뉴스핌 로이터] |
◆ 조기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높아져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먼저 북미 간 포괄적 합의 타결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관측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굿 이너프 딜'이라는 카드로 북미 간 포괄적 합의 타결을 중재한다면, 완전한 비핵화의 첫 단추가 꿰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인한 분석이다.
한미 간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언급이 있은 뒤, 불과 하루 만에 미국이 북한의 선(先) 비핵화에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선 '굿 이너프 딜'이 북한의 단계적·동시적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일각에선 조속히 4차 남북정상회담과 대북·대미특사가 동시에 가동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미 간 대화 동력이 상실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통위에 출석, '대북특사 파견' 가능성에 대해 "그런 안을 포함해서 모든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있어서도 분명히 남북 정상 간 형성된 신뢰 부분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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