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리비아 내전 위기가 점차 격화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석유 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의 교전이 계속되면서 리비아의 석유 공급 차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 시장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주 배럴당 70달러 선을 돌파했고,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이 6주째 오름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유가 80달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 진격의 하프타르, 석유산업 장악 관심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 2011년 사망한 이후 리비아는 유엔이 인정하는 통합정부 세력과 거대 군벌 세력으로 갈라져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 최근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리비아국민군(LNA)이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하면서 내전은 격화되고 있다.
LNA를 이끄는 칼리파 하프타르 최고사령관은 ‘이슬람 테러세력으로부터 리비아를 구하겠다’며 2014년부터 비(非)이슬람계 무장세력을 꾸려 통합정부와 이슬람주의 세력과 싸움을 벌여왔으며, 지난 1월에는 리비아 동부에 이어 남부 지역을 장악했다.
10일(현지시간) 국제사회가 인정한 정부군이 군용차를 타고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인근 도시에 도착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후 러시아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하프타르는 지난 4일 트리폴리로 깜짝 진격했고, 리비아 정부군은 ‘분노의 화산’이라는 반격 작전에 나서면서 충돌은 격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습을 포함한 충돌로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4일 동안 양측 교전으로 121명이 목숨을 잃고 부상자도 561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하프타르 진영이 통합정부 세력에 비해 전투력이 우위에 있지만 트리폴리 내에서 하프타르에 대한 반감이 깊어 그의 승리를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다만 하프타르가 트리폴리 장악에 성공한다면 이미 일일 100만배럴 이상의 석유 생산을 관리하는 하프타르가 트리폴리에서 50km정도 떨어진 주요 수출 터미널이자 정유 공장이 위치한 자이야까지 장악해 리비아 석유 산업 전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서쪽에 부가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고 생각하는 동쪽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더욱 굳힐 수 있다.
◆ 유가 80달러 위협
리비아의 주요 유전 및 석유 수출 터미널은 충돌 지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과거에도 리비아 내전 발발 시 석유 생산에 심각한 타격이 초래된 바 있어 석유 시장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작년 6월에도 하프타르가 동부 수출 터미널 두 곳을 장악한 뒤 리비아산 석유 선적이 수 주 동안 중단되는 등 차질이 생긴 바 있다. 당시 하프타르가 수출 터미널을 다시 넘겨주기 전까지 리비아 석유 수출은 일일 평균 80만배럴 감소해 10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이 초래된 바 있다.
최근 트리폴리 충돌 격화로 유가는 배럴당 70달러 선 위까지 올랐다.
트리폴리 충돌 전 리비아는 일일 평균 120만배럴을 생산했는데,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약속한 감산 규모에 더해 리비아 산유량이 하루 평균 50만배럴 감소할 경우 유가가 80달러를 웃돌 것이란 추산도 나온 상태다.
현재 유럽 정제업체들이 리비아산 원유를 가장 많이 사들이고 있으며, 리비아 내전으로 수출에 타격이 올 경우 유럽 업체들은 당장 신규 공급망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 대리전 양상
리비아 내전은 복잡한 국제사회 이해관계로 인해 대리전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날 하프타르는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집트 대통령실은 “엘시시 대통령이 리비아 안정을 위해 테러리즘, 극단주의 집단과 싸우는 (하프타르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고 밝혔다.
하프타르 세력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 이집트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서부를 통치하는 통합정부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형제단이 주축으로 유엔을 비롯해 터키와 카타르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서방 국가들 역시 리비아를 두고 양분돼 있는데, 난민과 테러 문제로 골머리가 아픈 러시아의 경우 난민을 막기 위해 군벌 세력에게 무기 지원을 지속해 왔다. 반면 미국은 유엔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통합정부를 인정하고 있지만, 리비아가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니만큼 주요 석유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하프타르 사령관과도 관계를 끊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리비아 동부에 유전 등 자산을 보유한 프랑스는 하프타르가 이끄는 군벌에 군사적 지원을 해오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이 하프타르를 겨냥해 공격 행위 중단 촉구 성명을 내려는 움직임도 반대했다.
프랑스처럼 리비아에 매장된 막대한 석유 및 가스 개발에 이해관계를 갖는 이탈리아도 리비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데, 유엔의 지지를 받는 리비아 통합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