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부출범 2년이 지나도록 뭔가 ‘색깔 있는’ 문화정책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말이 많습니다. DJ정부 또는 노무현 정부 등 과거 진보정권의 경우 문화에 대한 애정이 정책으로 표출됐다면서 말입니다. 20년이란 긴 시간과 230억 원이란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재탄생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재보수도 DJ정부 때(99년) 시작해서 노무현 정부 때 속도를 낸 사업입니다. 최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보존’에 대한 걱정이 늘고 있는데 정부의 시각은 낙제점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이미 훼손되었거나 방치되고 있는 문화유산이 많은데 보존에 대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종합민영통신 <뉴스핌>이 문화재 보존 현실과 대안을 고민해봅니다.
<목차>
①빨래 건조장된 백제 가마터…40년 넘도록 ‘나몰라라’
②국보급 문화재에 소화기만 덩그러니
③조선 기와에 시멘트가?…반복되는 부실 복원 논란
④도로변에 문화재가?…흉물로 방치된 유물
⑤“아픈 역사도 되새겨야”…일제강점기 유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⑥돌아오지 못한 문화재 18만여점, 환수해야 하는데…
⑦공익을 위한 문화재인가? 사유재산 침해인가?
⑧[인터뷰]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⑨예산 인력에 허덕...문화재청도 고민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여기가 백제 가마터라고요? 무랑 배추를 심던 곳인데…"
서울 지하철 사당역 5번 출구에서 나와 걷다 보니 마주한 서울 관악구 남현동 요지(도자기 굽던 터). 동네 뒷동산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만 이곳은 무려 국가지정 문화재다. 발걸음을 옮겨 들어가봤지만 기대했던 문화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무성한 잡초에 곳곳에는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누군가 설치한 빨랫줄에 이불까지 널려있었다. 국가지정 문화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관리가 엉망이었다. '백제 때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라는 안내판만이 역사적 가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뒤늦게 경관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옛 삼국시대 우리 민족의 자취를 되살리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서울 남현동 요지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방치돼 있다.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와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이미 폐허처럼 변해버린 곳도 있다.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과 관할 구청은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인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적 제247호 서울 남현동 요지에선 빨랫줄 설치, 쓰레기 투기 등 문화재 훼손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진=노해철 기자] 2019.05.15. sun90@newspim.com |
◆ 국보·보물 38건 심각한 훼손, 관리 시급
1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 문화재는 지난해 말 기준 총 3999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국보(336건), 보물(2146건), 사적(505건)은 총 2987건으로 약 74%를 차지한다. 그러나 관리는 형편없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이 2017년 실시한 국가지정 건조물 문화재(국보·보물) 정기조사 결과 점검 대상 문화재 202건 중 38건(19%)이 C~E 등급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훼손 상태에 따라 A~F까지 6개 등급을 매긴다. 경미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구조적 결함 또는 파손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 C~E 등급으로 분류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문화재는 18건(9%)이었으며, 정밀진단이 필요한 문화재는 8건(4%), 수리나 보수·정비 등 손상방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재는 12건(6%) 등으로 조사됐다. 보물 제152호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는 균열 등이 발견돼 E 등급을, 보물 제1576호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벽체 손상, 천장 변형 등으로 D 등급을 각각 받았다.
사적 제247호인 서울 남현동 요지도 대표적인 사례다. 남현동 요지는 삼국시대 백제 질그릇의 특징인 문살무늬를 가진 질그릇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1976년 4월 사적지로 지정됐다. 서울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백제 가마터로, 백제 질그릇 생산 기술을 밝힐 수 있는 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실상 방치되고 훼손되면서 관리가 시급한 상태다. 나무판자와 화분, 플라스틱, 병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무허가 건물까지 지어져 있어 문화재로써의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백제 가마터 주변에는 울타리만 설치돼 있을 뿐 훼손을 막기 위한 폐쇄회로(CC)TV 등 보호 장치는 부족했다.
남현동 주민 지용해(70)씨는 "일반인들이 보면 여기가 백제 가마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심지어 지난해까지는 무와 배추를 심던 밭이었다"고 전했다.
◆ "문화재 관리 예산 턱없이 부족…전문 인력도 없어"
국가지정 문화재 관리 주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다.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 문화재 관리·보호를 위해 수리나 필요한 시설의 설치, 장애물 제거 등을 명령할 수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를 손상하는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
문화재청과 문화재 관할 구청은 예산 문제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재 관리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사적지 보존을 위한 지원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현동 요지 관리 주체인 관악구청의 경우 남현동 요지 경관개선사업에 나섰지만 예산 부족으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관악구청은 당초 이곳을 공원화하는 작업을 거쳐 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사업비 부족으로 울타리와 안내판을 재설치하는 수준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경관개선사업을 위해 편성된 예산은 1억원 수준인데 설계 비용과 안내판 설치비를 빼면 6000만원 정도로 사업을 추진해야한다"며 "탐방로를 마련하고 울타리와 안내판을 교체해 사적지라는 것을 알리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남현동 요지 곳곳에선 나무판자와 화분, 플라스틱 병 등 쓰레기가 발견됐다. [사진=노해철 기자] 2019.05.15. sun90@newspim.com |
지자체가 1차적인 문화재 관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이를 수행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문화재 전담 부서가 있는 곳은 서울과 부산, 인천 등 10개(58.8%)에 그친다. 기초지자체 226개 중에선 수원, 부여, 공주 등 12개(5.3%)에 불과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리를 위한 재정규모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재청 재정지출 규모는 △2015년 6887억원 △2016년 7311억원 △2017년 7891억원 △2018년 8017억원 △2019년 9008억원 등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지만, 정부 예산 대비 0.18%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보존 사업과 전문인력 양성을 확대하려면 재정규모도 늘어야 한다"며 "현재 우리 정부 예산 대비 문화재청 재정지출 규모는 OECD 주요국가의 10년 전 수준인 0.3%보다도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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