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규하·한태희 기자 = 재벌개혁이 미흡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2년 평가가 제기된 가운데, 올해 하반기 기업들을 향한 공정당국의 칼 끝이 더욱 매서워질 전망이다. 특히 조만간 심판대에 오르는 태광·금호·하림을 비롯해 중견대기업들이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삼성·SK·LG·현대자동차 등 4대그룹도 공정위가 들여다 보는 중이다.
20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업집단 대림의 총수 2세인 이해욱 회장에 대한 검찰고발을 결정한 공정위는 조만간 태광그룹의 일감몰아주기 혐의 제재 여부도 결정한다. 이어 금호·하림그룹의 일감몰아주기 혐의도 줄줄이 심판정에 오를 예정이다.
당초 태광그룹의 사익편취 혐의 사건은 올해 초 제재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재심사 명령’이 내려지면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공정위 사무처(검찰에 해당)는 2014년∼2016년 기간동안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소유했던 계열사 티시스(휘슬링락CC)를 통해 태광 소속 계열회사에 부당 내부거래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김치 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 혐의다.
또 이 회장 일가 소유인 메르뱅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와인거래를 한 혐의를 두고 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부당지원 잣대의 핵심인 정상가격 산정에 대한 재심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뉴스핌 DB] |
이에 더해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삼성그룹의 사내급식에 대한 부당지원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삼성그룹의 급식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가 주된 타깃이다.
지난 3월 조사에 나선 LG그룹 물류계열사인 판토스의 부당지원 혐의도 있다. SK그룹 지주사인 SK와 최태원 회장의 회사기회유용 혐의도 조사 중이다.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현대글로비스와 삼표 간의 ‘통행세 챙기기’ 의혹도 이달 공정위 기업집단국 조사관들이 현장조사를 벌인 바 있다.
글로비스와 삼표가 광업회사-물류회사-현대제철로 이어지는 거래구조(석회석 공급)에 실질적 역할 없이 ‘통행세’를 챙긴 혐의다.
무엇보다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23조2항) 적용대상인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서 사익편취 사각지대로 불리는 자산 2조~5조원 기업들도 집중 대상이다.
자산 5조원 아래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사익편취(23조2항) 적용이 어려운 만큼, 공정거래법 제23조의 제1항 제7호인 ‘부당지원’ 잣대가 조준된다. 이미 관련 업계에서는 별다른 역할 없는 계열회사를 중간에 끼워 넣는 일종의 ‘통행세’ 거래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공정위는 자산 2조~5조원 중견기업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실태점검을 고민했으나 100여 곳이 넘는 중견기업 실태파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때문에 중견기업에 대한 조사는 부당지원혐의가 큰 기업들을 위주로 조준될 전망이다. 조사 대상은 시장 모니터링과 직권인지, 시민단체 등의 신고가 결정적인 역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마침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지난달 22일부터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KPX그룹의 현장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KPX그룹의 KPX홀딩스, 진양홀딩스, KPX케미칼, 씨케이엔터프라이즈 등이 부당지원혐의를 받고 있다.
KPX그룹이 유기화합물 제조업체인 KPX케미칼의 주거래 품목 거래에 총수일가 회사인 씨케이엔터프라이즈를 끼워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 ‘통행세’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하반기부터는 자산 4조5000억원의 농심부터 풍산, 한일시멘트 등 선 굵인 중견기업들에 대한 잇따른 조사가 확산될 조짐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경제개혁리포트 대규모기업집단 이외 회사들의 일감몰아주기등 사례분석 표 [뉴스핌 DB] |
더욱이 2년 전부터 경제개혁연구소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공시대상기업집단(5조원 이상) 외의 중견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를 지적한 만큼, 자산총액 또는 시가총액이 큰 중견기업집단들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경제개혁연구소가 문제제기한 일감몰아주기 중견기업집단은 농심그룹, 성우하이텍그룹, 한미사이언스그룹, 풍산그룹, SPC그룹, 대상그룹, 오뚜기그룹, 한일시멘트그룹 등이 있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일갈몰아주기 조사가 어려운 제도적 여건이다. 법원 기준이 까다로워서 정상가격으로 부당이득으로 취했는지 보기는 어렵다. 통행세도 마찬가지”라며 “공정위 인력 한계도 있어 조사 대상을 많이 잡기 보단 가장 유력한 소수 사건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 법원이 요구하는 증거도 충분히 갖춰야하는 점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불법행위가 있다면 조사를 통해 제재를 해야 준법 경영을 유도할 수 있다”면서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를 조사했는데 법원에서 뒤집히면 불법행위 억제력, 위화력이 떨어진다. 공정위는 조사 대상을 확대하는 것보다 가장 큰 사건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로서는 사실상 살얼음판”이라며 “4대, 5대 10대기업들과의 만남을 이어온 김상조 위원장의 일성은 관행을 끊고 스스로 변화하라는 얘기였다. 대기업부터 중견기업까지 일감몰아주기 개선에 대한 사정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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