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소강상태에 접어든 남북관계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의 ‘패키지 대북 지원책’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고 남북 민간단체 간 접촉도 불허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신청을 승인하고 세계식량계획(WFP)유니세프(UNICEF)의 북한아동, 임산부 영양지원 및 모자 보건사업 등 국제기구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800만달러를 공여하기로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직접 나서 국제기구 또는 직접적인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여론수렴 절차도 거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북한에 ‘선의의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 정부가 대북 지원을 제안한지 7일이 되는 24일 오전까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각종 대남 선전매체를 통한 압박 메시지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조속 이행, 외세 간섭 배격 등이 주요 내용이다.
[평양=뉴스핌]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5일 오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6.15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18.10.05 |
중국 선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간 민간접촉도 사실상 무산됐다. 북측은 지난 23일 6.15 공동선언실천 해외위원회 명의의 팩스를 통해 회의 취소와 선양에서 인력을 철수시킬 것을 남측 민간단체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가 당일 또 다시 번복했다.
6.15 북측위원회 관계자들은 이미 중국에 6.15 남측위원회 인원들이 와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4일 만날지 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당초 23~24일 이틀 간 일정으로 6.15 남북공동행사 개최 등을 두고 실무접촉을 가질 계획이었다.
6.15 남측위 외에 24~25일에는 사단법인 겨레하나와 북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26일은 남북 민화협이 회동을 가질 예정이었다. 각각 남북 대학생 교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조선인 유해 송환 문제·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두고 광범위한 논의를 가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관련 실무접촉은 결국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민화협 핵심 관계자는 “취소된 게 맞다”며 “당분간 만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최근 남북 간 소강국면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실무접촉 취소 배경에 북한 당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화협 핵심 관계자는 “이제까지 민간이 이런 식(당일 취소 통보)으로 되는 경우는 없었다”며 “(이번 취소 배경에는) 뭐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4월 촬영된 개성공단의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전문가 “北, 개성공단 재가동·금강산관광 재개 수준 원해”
일련의 상황을 두고 대북 전문가들은 북미 간 교착국면 장기화의 ‘불똥’이 한국에 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것이 근본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대로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며 “당분간 당국과 민간 간 접촉과 교류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한국 정부에 원하는 것은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정도의 수준”이라며 “하지만 북한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문 센터장은 미국 정부의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 억류를 언급하며 “미국과의 협상도 구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북한의 불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재천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민간접촉까지 북한이 끊으면 남북 간 냉각기가 길어질 수 있다”며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상당히 답답해지고 애가 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그러면서 “당분 간 북한은 대남 압박 모드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오는 6월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부 청사 내부 [사진=뉴스핌 DB] |
◆정부 “남북 소강국면 맞지만...北 반응 있다, 없다는 잘못된 접근”
정부는 남북 간 소강국면은 맞지만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에 북한의 반응 여부를 따지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입장이다. 되도록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WFP와 유니세프를 통한 공여사업은 국제기구를 통해서 (물자가) 지원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북한이 직접적으로 접촉할 일은 없다”며 “WFP 상주사무소가 평양에 있기 때문에 그 쪽 본부에서 다룰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북한이 반응을 내놓거나 또는 한국 정부가 이를 듣고 하는 프로세스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남북 간 소강국면과 별개로 북측의 반응이 있다. 없다를 따지는 것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추진과 관련, 북측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남북이 협의 중이라고만 밝힐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의 채널을 통해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며 “결과가 나오면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