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만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틀 연속 강경발언을 이어가며 서 국정원장을 상대로 고발장 제출을 예고하는 등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인 만큼, 여권 내에서도 여당 싱크탱크 수장과 국가정보원장의 회동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실정이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 kilroy023@newspim.com |
◆공세 수위 높이는 한국당...“국정원법 위반 따져보겠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원법 위반 가능성까지 따지며 서훈 국정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8일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총선을 1년도 채 앞두지 않은 민감한 시점”이라며 “도대체 왜 정보기관 수장이 선거 실세와 만나야 했는지 국민들의 의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를 제1적폐로 몰아붙이며 국정원 본연의 기능마저 마비시키려했던 정권”이라며 “그런 정권이 여당실세와 밀회한다는 건 아예 대놓고 국정원장이 직접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첫째는 여당 내 공천 숙청자에 대한 정보수집, 둘째는 야당 죽이기 위한 정보수집, 셋째는 대북정보 및 대내정보를 수집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 수집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유한국당은 그 둘이 과연 왜 만났는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알아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선포했다.
국가정보원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정보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이은재 의원은 “대통령의 측근이나 여당의 유력인사 등이 수시로 국정원장을 만난 것은 아닌지 철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를 위해 정보위 예산심사에서도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국정원장 업무추진비 사용명세에 대해서 부적절한 사용이 있었는지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법 위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 오늘 안에 (서훈 국정원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kilroy023@newspim.com |
◆바른미래당 “국정원장이 직접 소명해야”... 정보위 소집은 한국당 반대로 무산
이날 오전 바른미래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민감한 시기인 만큼 서훈 국정원장이 나서 만남을 소명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에 따라 총선 개입 의혹을 부를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최고 정보수장인 서훈 국정원장은 어떤 성격의 만남이었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성실히 해명하고, 청와대는 이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주의라도 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적 대응”이라고 꼬집었다.
오 원내대표는 이어 “국정원장에겐 사생활이 있을 수 없다”며 “국내정치와 단절될 것이라는 인사청문회 약속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가타부타 해명해야지 최측근 보호막 뒤에 숨어 모르쇠는 말이 안 된다.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일갈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독대가 아니어도 문제가 있고 독대라면 더 문제”라며 “총선 전략을 짜는 양 원장과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서 원장이 만나서 무엇을 했겠느냐. 북한 문제를 여당이 총선 국면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의논하지 않았을까하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
전날 양 원장은 “당일 만찬은 독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함께 한 만찬”이라며 “서 원장께서 원래 잡혀있었고 저도 잘 아는 일행과의 모임에 같이 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또한 “(진실규명을 위해 전날) 국정원에 오라고 했지만 겨우 면피성 전화만 잠깐 왔다”며 “여러 명 만났고 사적인 만남이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서훈 국정원장을 국회에 출석시키기 위해선 국회 정보위 차원의 소집이 필요하지만 이 의원은 “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첫날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당 차원에서 국정원장을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며 정보위 소집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이혜훈 정보위원장yooksa@newspim.com |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매지 말아야..." 범여권에서도 쓴 소리
범여권에서도 서 원장과 양 원장의 회동 의도에 충분히 의혹 제기가 가능한 만큼 처신을 잘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평화당은 논평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장의 처신이 부적절하다”고 일갈했다.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공한 셈”이라며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대선 캠프에 몸담은 전력이 있다지만 국정원장의 이러한 행동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을 만한 처신으로 그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문 정부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자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부터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또한 27일 논평을 통해 “자유로운 사적 만남을 민주국가에서 통제할 수는 없지만 더욱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국정원장은 애초 오해를 사지 않는 신중한 행동을 보였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공정한 행보가 더없이 필요한 시기”라며 “정치적 중립을 망각한 과거 국정원의 그늘이 촛불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당사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회동 내용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무리 사적 모임이라도 뭐하러 이 시점에 만났지라는 느낌은 좀 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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