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 시중은행 본부장이었던 A씨(57세)는 지난해 명예퇴직을 택했다. 경력을 살릴 기회를 엿보던 중 DGB대구은행의 채용공고가 눈에 띄었다. 나이 제한 없이 기업금융 전문역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기업금융에서 잔뼈가 굵은 데다 퇴직 전에는 지역내 7~8개 점포를 묶어 관리해본 경험이 있어 자신있게 지원했고 이달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노하우를 살리면서 은행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시중은행 퇴직자 중 기업영업 베테랑들이 지방은행 영입 1순위로 떠올랐다. 이들의 미션은 영업 기반이 약한 수도권 지역에서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것. 지방은행들이 지역경기 침체로 수도권 틈새 공략에 나서면서 시중은행 출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려는 전략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남은행은 시중은행 퇴직 직원을 대상으로 기업금융지점장 채용을 진행 중이다. 경남은행이 퇴직자 채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용 과정이 끝나면 수도권 지역에 들어설 신설점포에 투입된다. 경남은행은 내달 경기 하남시 하남미사역지점에 이어 오는 8월 경기 시흥시에 시흥배곧지점을 열 계획이다.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하며 성과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
경남은행 관계자는 "영업권이 지방이다 보니 수도권 영업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최근 지방은행에서 퇴직자들을 많이 뽑고 있는데 이를 벤치마킹해 수도권 기업여신을 강화해 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DGB대구은행에선 지난달 지점장 등 시중은행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35명을 뽑았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에서 80여명이 지원했고 평균 나이는 57세였다.
'기업금융지점장' 직위를 단 이들은 이달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수도권에 28명, 대전·세종에 2명, 부산·울산·경남에 5명이 배치됐다. 지점장이지만 지점을 관리하는 업무는 하지 않고 기업 영업에만 집중하는 게 특징이다. 사무실로는 출근만 하고 주로 기업을 찾아가는 아웃바운드 영업을 담당한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기업영업은 네트워크나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금융지점장들이 좋은 성과를 내면 채용을 더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남, 대구은행보다 앞서 수도권에 진출한 광주은행, 전북은행은 2015년부터 시중은행 퇴직자들을 채용해왔다. 지금까지 63명을 채용했으며 수도권을 비롯해 대전, 세종 등에서 기업영업을 맡고 있다.
지방은행들이 시중은행 퇴직자 채용에 나선 것은 수도권 영업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들은 지역 체감경기가 싸늘하게 식으면서 수도권 기업대출 공략에 나선 상황이다. 특히 조선, 자동차 업종이 주력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관련 산업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위기감이 크다.
부산은행의 지난 1분기 당기순이익은 11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4% 줄었고, 경남은행은 625억원으로 6.0% 감소했다. 대구은행도 8.1% 줄어든 855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이들보다 수도권 영업 비중이 높은 광주은행(453억원)과 전북은행(260억원)은 각각 0.4%, 4.3% 증가했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부울경 지역은 주력 산업 구조조정으로 돈이 돌지 않아 대출 수요가 부족하다"며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도권 신도시나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영업권을 확대하고 있는데 나름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올해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