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게임은 취미활동일까요? 아니면 질병일까요? 단순한 논쟁 같지만 누군가에는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식 진단명으로 채택하는 새로운 국제질병분류(ICD)를 의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게임중독과 관련된 질병이 새로 생기게 됩니다. 게임중독을 병으로 분류해 진료 대상으로 보는 건데요. 국내·외 게임업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과도한 결정이란 주장입니다.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게임이용장애’가 무엇이며, 질병 분류가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 정리하였습니다.
[서울=뉴스핌] 조정한 기자 =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게임이용장애 기준을 신중히 설정해 개정안이 실효성 있기를 바란다."
지난 5월 말,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보건총회에 대표로 참석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게임이용장애'가 국제질병분류체계(ICD-11)에 포함되자 이 같이 말했다. 반면,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즉시 '게임 질병 코드' 결정에 반박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게임 시장 규모는 13조원. 세계 4위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게임을 육성 산업으로 분류했지만, 게임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의 입김에 게임 콘텐츠 산업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게임 산업은 그동안 '복지부·여가부 vs. 문체부' 틀 안에서 발목 잡혀왔다. 청소년 온라인 게임 심야 규제인 '셧다운제' 주무부처가 여성가족부인 점, 보건복지부가 게임 업계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게임 질병 코드'에 적극 찬성표를 던진 모습만 봐도 엇박자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전경 [사진=보건복지부] |
관련 법안을 다루는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게임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쪽은 자녀가 있는 부모님과 의료계다. 관련 법안을 내거나 여론을 주도하는 것만으로도 선거철 표심을 자극할 수 있다"며 "'게임 중독세'를 통한 세수 확보도 가능할 거라는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도 이슈를 자극하고 있다"고 부처 간 다른 속내를 전했다.
이 같은 입장 차는 곧바로 '게임이 왜 질병인가'에 대한 논의보다 부처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복지부는 법조계·시민단체·게임분야·보건의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를 꾸려 '게임이용장애'를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문체부는 즉각 "참여 의사가 없다"고 잘라냈다. 문체부 관계자는 "게임 산업의 명운이 달린 만큼 절대 끌려갈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국무조정실이 '게임 질병 코드' 이슈에 직접 뛰어든 배경도 부처 간 핑퐁 싸움 때문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민관협의체의 경우 어느 한 부처가 주도하기보다는 국무조정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될 것"이라고 밝혀 불붙은 부처 간 주도권 싸움에 선을 그었다.
'게임=질병' 수식어까지 등장하자 게임 업계도 결국 터져버렸다. 한 관계자는 "게임 업계가 특별한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 것도 아닌데, 규제만 하려고 한다"면서 "부처 간 갈등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이제 업계가 직접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리고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말부터 릴레이 토론회를 시작했고, 공대위는 사회적 합의 없는 한국표준질병분류(KCD) 도입 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의 10가지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임 업계는 '게임 질병 코드' 이슈만큼은 부처 간 기싸움으로 이어졌던 국내 게임 규제와는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정현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협회·단체들과 함께 적극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며 "글로벌 연대나 협의체 구성이 가능한 것인지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본부장은 토론회에서 "미국,영국,캐나다,호주와의 국제 공조를 통해 WHO의 '게임 질병 코드' 등재 반대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giveit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