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개관 1주년을 맞아 'BARBARA KRUGER:FOREVER'를 27일부터 오는 12월 29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의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이다.
본 전시는 바바라 크루거의 44년간 다양한 작업유형을 감상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선보인 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 공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김경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선임연구원은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최초로 한글 작업 두 점도 선보인다"고 밝혔다.
바바라 크루거의 한글 작품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
바바라 크루거(74)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지난 44년 동안 차용한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병치한 고유의 시각 언어로 세상과 소통해왔다. 디자인은 의류브랜드 '수프림' 로고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예전의 사진과 책, 잡지에서 이미지를 고른 후 자르고 배경을 날리고 편집한다. 그리고 그 위해 적절한 메시지와 단어를 매치하는 거다. 이 작업은 1981년부터 진행됐다. 크루거는 자신의 작업이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기를 바란다. 그 역시 어린시절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예술은 보는 관람객이 참여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작품 'FOREVER'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
바바라 크루거의 작업은 미술관 로비서부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세계 최초의 한글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무제(충분하면 만족하라)'는 6m 높이의 대형 설치물이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창문 높이와 맞먹는 크기다. 더불어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는 전시장 내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김경란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바바라 크루거는 한글의 조형성에 관심이 많다. 김 연구원은 "바바라 크루거 작가가 올해 봄에 한글 작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함께 UCLA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바바라 크루거와 친분이 두터운 권미원 미술사학장이 지원했다. 한국식 표현은 권 학장이 도움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업이자 전시 제목이기도 한 'FOREVER'는 강렬함을 뽐낸다. 거대한 텍스트로 방 전체를 도배한 이 작업은 관람객에게 기존과 전혀 다른 작품 관람 방식을 제안한다. 이 작품은 건축과 공간에 대한 바바라 크루거의 오랜 관심을 집약하고 있다. 관람객은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서 시선을 바꿔가며 작품 안에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전시실은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작품을 탐구하게 된다.
전시장 전경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된 이유는 바바라 크루거가 건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은 사랑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늘 공간이 우선돼야 하며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고민한다.
'FOREVER' 작품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적혀있다. "당신이 알고 있듯,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다. 바바라 크루거의 젠더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바바라 크루거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의 권력과 관계에 대한 고찰이 담긴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 그는 페미니즘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다. 1980년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데모에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벽에 붙이는 등 작품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다.
"굳이 말하면 페미니스트"라는 그지만 정작 페미니스트 작가로 규정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바바라 크루거는 인터뷰에서 "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계급과 분리해서 생각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계급은 인종과 결부돼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문화가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형성하고 억제하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장 전경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이번 전시에는 '원형'이 되는 초기 페이스트업(paste-up) 작품 총 16점이 출품된다. 일반적 지식 생산과 시각적 규칙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무제(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Untitled(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1981)와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Untitled(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를 꼽을 수 있다.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시작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크루거 스타일'은 1981년 발표한 작품 '무제(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부터 확고해졌다. 또한 1996년도 설치 작품 '무제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를 위한 프로젝트) Untitled(Project for Dazed and Confused)'도 눈길을 끈다.
바바라 크루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왔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업 세계에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해 동시대 이슈들에 대해 깨어 있는 감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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