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입장을 고수하며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둔다는 왕실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대해 답답함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더 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엘리자베스 여왕이 현 정치권에 대해 실망했으며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함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제임스 캐머런 전 총리가 지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직후부터 불만이 계속 쌓여 왔다며, “정치 지도부의 지도력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가 첼시 플라워 쇼에 참석해 함께 걷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엘리자베스 여왕은 1952년 재임한 이후 현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거의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지난 1월 테리사 메이 전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영국 하원이 정치 사상 최대 표차로 부결시킨 후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투표까지 밀어붙이자 참다 못한 여왕이 이례적이지만 우회적인 정치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현대 사회에서 다들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지만, 나는 오래된 지혜를 말하고자 한다.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합의점을 찾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라며 브렉시트로 분열된 정치권을 겨냥해 일침을 놓았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치 상황이 자칫 여왕의 역할을 극도로 정치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 대해 야당 측에서 노 딜을 막기 위해 정부 불신임안 투표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가운데, 존슨 총리는 불신임안이 가결되더라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의회에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없는 여야당이 여왕에게 선택권을 맡겨 여왕은 불신임안을 가결시킨 의회의 뜻을 거스를 수도 사퇴하지 않겠다는 현직 총리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영국 왕실 측에서는 여왕과 왕실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국가의 명운이 달린 사안인 만큼 왕실이 개입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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