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바야흐로 지구촌 채권시장의 ‘서브 제로’ 시대다.
경기 침체 공포 속에 선진국 국채를 중심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에 거래되는 채권이 급증한 것은 물론이고 독일이 사상 처음으로 30년물 국채를 서브 제로에 발행하는 등 연일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 안전자산 매입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장기간 유지하고 있던 금리 상승 베팅을 전면 청산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 [사진=블룸버그] |
시장 전문가들은 불안한 표정이다. 투자자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후폭풍을 맞게 될 수 있다는 경고다.
2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이 30년 만기의 장기물 국채를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에 발행, 또 한 차례 이변이 발생했다.
2050년 만기 8억2400만유로(9억1400만달러) 규모의 제로 쿠폰 채권을 마이너스 0.11%에 발행한 것.
이자를 제공하지 않는데도 안전자산을 확보하려는 입찰 수요가 몰려든 결과다. 서브 제로 채권 물량이 최근 16조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연일 외형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이와 별도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은행 베를린 힙이 10억유로 규모의 모기지담보채권을 마이너스 0.59%에 발행했다고 보도했다.
금융권과 민간 기업의 서브 제로 채권 발행은 지난 2016년 이후 꼬리를 물고 있지만 이번 베를린 힙의 발행 금리는 사상 최저치에 해당한다.
시장 조사 업체 비안코 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마이너스 수익률 회사채 물량이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 선을 돌파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200억달러에 불과했던 서브 제로 회사채 규모가 수직 상승한 것은 극심한 안전자산 쏠림 현상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마이너스 수익률 시대를 겨냥한 베팅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운용 자산 규모 1조달러의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포트폴리오에서 금리 상승을 겨냥한 포지션을 모두 청산했다.
펀드 측은 금리가 하락할 때 수익률을 내는 구조로 포트폴리오 운용 전략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최근 채권 시장의 상황과 유동 자산 비중을 높이기 위한 복안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장기화 조짐과 이에 따른 실물경기 한파, 여기에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완화가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에 따르면 27조8000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이외 통화 표시 투자등급 채권의 수익률이 0.11%에 그치는 실정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후폭풍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 채권의 수익률이 2%포인트 오를 때 투자자들이 50%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을 전망이다.
비안코 리서치의 짐 비안코 대표는 CNBC와 인터뷰에서 “경기 악화와 대체 자산의 부재가 채권 기록적인 수익률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하지만 금융시스템은 마이너스 금리를 근간으로 작동할 수 없고, 채권시장은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