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유전자 검사 결과 아버지와 자녀들의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더라도 아내와의 혼인관계 중 임신·출산한 자녀라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재확인됐다.
유전자 확인 기술 발전 등에 따라 36년 동안 이어져 온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를 기존보다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관련 법에 따라 가족 관계를 규정한 기존 판례에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sunjay@newspim.com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정에서 A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 상고심 판결에서 원고 측 패소를 선고한 원심을 대법관 9명 다수 의견으로 확정했다.
대법은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해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또 친생추정의 예외범위에 대해서도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해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자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의 이번 판단으로 친생추정 원칙 예외 조항은 36년 전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친생자 추정 원칙은 민법 844조에 따라 혼인한 아내가 낳은 자식은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 내용이다.
다만 남편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친생 부인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친생 부인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기간 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아내가 낳은 자식은 이 법에 따라 친생자 추정이 확정된다.
또 친생자 추정 원칙 '예외'에 해당할 때에는 남편이 자식을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법은 지난 1983년 판결을 토대로 그동안 친생자 추정 원칙 예외 사유를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친생자 추정이 깨질 수 있다'고 좁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유전자확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36년 전 판례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대법원도 이를 판단하기 위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해 사건을 심리하는 것으로 과거 판례 변경 가능성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 등을 담당한다.
앞서 A 씨는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으로 첫 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 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 째 자식이 태어났고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알고 둘 째 역시 친자식으로 출생신고 했다.
하지만 A 씨는 이후 2014년 아내와 불화로 이혼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둘 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들이 친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1심은 기존 판례를 토대로 친생추정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 씨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각하 판단을 내렸다.
반면 2심은 "둘째 아이의 경우와 같이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된 경우 친생추정 예외사유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친생자 관계가 아니더라도 법적으로 양친자 관계는 인정된다고 보고 A 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관 9명도 이같은 원심이 옳다고 보고 A 씨 측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대법관 3명은 "인공수정 자녀의 친자관계는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합치된 의사와 시술에 대한 동의를 근거로 인정돼야 한다"고 별개 의견을 냈다. 이어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증명되고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파탄된 경우에는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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