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재판부가 검찰에 재차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조사 없이 바로 판결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경하게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대한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지난 1차 공판준비기일 당시 검찰에 "피고인들의 지시를 받아 실행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형법적 평가가 빠져있고, 공소사실이 지나치게 장황하다"며 "법관 생활 20년을 하면서 이렇게 상세한 대화내용이 나오는 공소장은 처음 본다"고 지적하면서 공소장 변경을 요구한 바 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19.04.02 pangbin@newspim.com |
검찰은 재판부에 '(지시를 받은) 공무원들을 공동정범으로 하거나 간접정범으로 하더라도 방어권에 지장이 없고, 이들이 적극 가담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때 가서 공범으로 판단해도 무방해 피고인들 처벌에는 지장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간접정범과 공동정범은 범행이 다르다"면서 "간접이라고 할 경우에도 고의가 없는지, 위법성이 없는지, 책임이 없는지에 따라 방어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고 공동정범일 때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특정하지 않고 증거조사에 들어가게 되면 변호인이 이 모든 가능성에 대해 변론을 준비해야 하고,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되면 골라서 처벌할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은 형사소송법 원칙과 다른 것 같다"며 "검찰이 3000개 이상의 증거를 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사실 구성에 자신이 없다면 주의적, 예비적으로라도 공소사실을 특정해달라"고 일침을 놨다.
재판부는 특히 "검찰이 이번에도 공소사실을 명확히 특정하지 않는다면 증거조사 없이 무죄나 공소기각 등 판결을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검찰은 공소장 변경 여부를 2주 안에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사건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표를 종용하고,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추천 인사가 탈락하자 선발을 백지화하는 등 임원추진위원회 회의에 부당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이날로 준비기일 절차를 모두 끝내고 내달 27일 첫 공판을 연다. 1차 공판에서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출석하고, 양측의 공소사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PT)이 이뤄질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11월 2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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