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뉴스핌] 김기락 기자 = #1993년 기찻길을 걷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세명. 자욱한 구름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들이 흩어져 날아간다.
한 학생이 헤드폰을 쓰고 '듀스'의 '나를 돌아봐' 노래를 듣자, 나머지 두 명은 듀스의 춤을 따라한다.
듀스는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남성 듀엣으로,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등 남성 댄스 가수의 전성시대였다.
청소년들의 '부의 상징'으로 대변될 만한 워크맨. 워크맨 이상으로 보기 힘든 CD플레이어는 카세트테이프의 음질을 초월했다.
"야야 우리 이 다음에 성공하면 뭐할까?" 한 학생은 친구들에게 질문한다. 곧 이어지는 그랜저가 철도를 횡단하는 모습. 친구의 대답은 명료하다. "그랜저 사야지" 다시 흘러나오는 백그라운드 뮤직은 '스탠드 바이 미'(Ben E. King).
30초 분량의 현대자동차 '더뉴 그랜저' 프리런칭 영상은 1988년 88서울올림픽 이후 급성장한 한국 경제 속에서 성공의 열망을 보여준다.
마이카 시대가 열리고, 부동산 시장이 부풀면서 여기저기서 "돈 벌었다", "차 샀다", "그랜저로 바꿨다" 등 당시 성공의 상징은 그랜저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랜저는 90년대 격변기를 지내온 70년대 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잘 사는' 아빠를 만나지 못하면 그랜저는커녕, 버스 신세를 면치 못한 시절.
어쩌면 그랜저를 사고 싶다는 꿈은 당시 학생들로선 상당히 저돌적인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50원짜리 아이스크림 '깐돌이',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서주 아이스주, 1972년 당시 한국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인 '브라보콘'을 먹고 자라면서도, 성공을 꿈꿨다.
현대차는 19일 경기도 일산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더뉴 그랜저를 발표하며 이 시대의 성공을 정의하려고 하고 있다. '사장님'만이 성공했다는 과거에서 현재 열심히 살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젊은 세대들을 성공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것이다.
이날 행사는 더뉴 그랜저 발표에 앞서 해당 동영상으로 시작됐다. 이어 참석한 김풍 웹툰 작가는 "저는 일반적인 성공에 부합되지 않는다. 성공의 키워드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화가 사양 산업으로 막을 내리던 1998년 무렵, 그때 웹툰을 시작했다. 그후 게임 회사, 영화 기자도 해봤다. 연기가 해보고 싶어서 연기도 해봤다. 그제서야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생겼다. '찌질의 역사'는 그렇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성공의 의미는 과거와 확실히 다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 젊음을 바쳐 승부를 걸어볼 만한 것이라면 성공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현재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이든... 이를 떠나 '성공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비전을 영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7080세대에게 그랜저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볼 수 있는 하나의 향수로 남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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