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은행원은 친절한 서비스의 대명사로 통한다. 대개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맞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그늘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고객이란 권리를 악용해 욕설, 폭력, 스토킹으로 은행원을 괴롭히는 금융 소비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금융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은행산업 근로자의 감정노동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고객 욕설이나 폭언 등을 경험한 은행원은 절반(50.5%)을 웃돈다. 업무와 무관한 일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는 20.5%에 달하고, 물리적인 폭력이나 성희롱 등을 겪었다는 응답도 나온다.
신한은행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부터 고객만족센터(현 소비자지원부) 내 특별민원팀을 가동했다. 김수철 팀장은 팀 신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은행원들의 '수호천사' 역할을 하고 있다. 민원 해결을 비롯해 직원들의 사후 복지까지 책임지는 게 그의 임무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김수철 신한은행 고객만족센터 특별민원팀장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뉴스핌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9.10.30 dlsgur9757@newspim.com |
◆ 전국 영업점 누비며 악성민원 해결
은행권에서 직원 보호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른 것은 2016년. 사회 전반에 '갑질 논란'이 번지면서 은행권에서도 이슈가 됐다. 이에 2016년 7월부터 직원 보호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신한은행은 특별민원팀을 만들었다.
김 팀장은 팀 초창기 멤버다. 2004년 입행 후 10년 이상 영업점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소비자지원부에서 분쟁 조정을 담당해 왔다. 처음 꾸려진 조직인 만큼 바닥부터 다지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악성 민원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행동분석에 들어갔다. 전국 지점으로부터 정상적인 응대가 불가능하고 물리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고객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1년간 300건 정도를 수집했어요. 전화로 문의를 받은 사례는 훨씬 더 많고요. 사소한 일로 4~5시간 꼬투리를 잡는 것부터 임신한 직원에게 물건을 던지거나 스토킹을 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런 민원의 90% 이상이 여성이나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집중됐어요."
초기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피하기 위해 무조건 사과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받는 직원들이 불이익을 받거나, 지점 전체가 피해를 볼까 우려해서다.
서툴기는 김 팀장도 마찬가지. 전국을 돌며 직접 직원들을 만나 코칭을 하다 감정이입을 하기 일쑤였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처음에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같은 은행원이다 보니 내 일처럼 느껴지고 화가 나서 밤에 잠도 오지 않더라고요."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김수철 신한은행 고객만족센터 특별민원팀장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뉴스핌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9.10.30 dlsgur9757@newspim.com |
◆ "은행원 보호가 곧 고객 서비스"
1년이 지나자 그에게도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다. 접수된 민원을 중심으로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케이스별로 기본적인 응대 방안을 만들었다. 특정 창구에서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경우 직원 자리를 이동시키고, 업무 방해 문제가 커지면 법적 대응도 불사했다.
"'신입직원이라 뭘 잘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일단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무조건적인 사과는 금기어입니다. 고의로 악성 민원을 제기한 고객에게 빌미를 주면 문제가 더 커지죠. 또 상사를 통해 압박을 주는 경우가 많아 주기적으로 부지점장, 지점장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팀장은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매달 전 지점에 공유한다. 직원들에 대한 사후조치도 체계화했다. 심리 치료를 위해 전문가와 연결해 주거나 평가 제외, 휴직 등의 조치도 취한다.
악성 민원 처리와 직원 보호 조치가 자리를 잡으면서 은행 내 문화도 달라졌다. 영업점에서 문제가 생기면 고민 없이 바로 연락하는 직원이 많아진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직원들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래야 좋은 서비스가 나옵니다. 결국 극소수의 악성 민원에 대처하는 게 다수의 소비자를 위한 것이란 의미죠. 앞으로 소비자와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분쟁조정 전문가가 보다 많이 양성됐으면 좋겠습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