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과 이란이 불러일으킨 전운에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미국의 공습에 이란의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정예부대 사령관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은 양국의 전면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의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사진=로이 뉴스핌] |
원유 옵션 트레이더를 포함한 투자자들은 당분간 유가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에 공격 베팅하는 움직임이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수직 상승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3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장중 3.5% 뛴 배럴당 64.09달러에 거래됐고, 국제 벤치마크 브렌트유 역시 4% 가까이 치솟으며 배럴당 70달러 선에 바짝 근접했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는 지난해 5월 이후 최고치로 뛰었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아닌 군사령관 사살은 차원이 다른 행보라는 지적이다.
미국과 이란의 마찰이 통제 영역을 벗어났고, 이란이 전면적인 보복에 나서면서 전시 상황이 불거지는 한편 원유 인프라에 일격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보좌관을 지낸 제이슨 보도프 콜롬비아 대학 연구원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중동 정세에 쓰나미가 발생한 셈"이라며 "이란이 과격하고 치명적인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 업체 마틸다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리처드 훌러턴 대표는 "미국이 이란을 향해 날은 세운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군 사령관의 피살은 차원이 다른 얘기"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과격한 노선을 취했고, 이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옵션 트레이더들은 유가 상승 베팅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유가 상승 헤지 비용이 가파르게 치솟았고, 이로 인해 콜 대비 풋 옵션 프리미엄을 의미하는 이른바 풋 스큐는 마이너스 7에서 마이너스 3으로 상승했다.
유가 상승 대비 하락 베팅에 대한 프리미엄이 지난해 11월 초 이후 최저치로 하락한 셈이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이라크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원유 시설 타격 및 공급 교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UBS의 지노반니 스투노보 상품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2위 산유국"이라며 "이라크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원유 시장의 타격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반격과 이에 따른 양국의 무력 충돌 여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번 사태가 찻잔 속 태풍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는 투자자들도 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라시아 그룹의 헨리 롬 애널리스트는 투자 보고서에서 "앞으로 최소 한 달 가량 미국과 이란의 신경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군사 충돌의 수위는 낮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이 미군 캠프를 공격하는 한편 미국이 이에 반격하는 형태의 충돌이 예상되지만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는 "충돌이 이라크의 원유 시설을 강타하거나 이란이 원유 공급망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열려 있고, 이로 인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이날 마켓워치는 지난 2011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버락 오바마가 이란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지적하며 정치적 상황이 이번 공격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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