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유해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에 대비해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광현(63) 전 애경산업 대표가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이근수 부장판사)는 31일 오후 2시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 전 대표의 항소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모 전무와 이모 팀장 역시 원심 형이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이 지난해 5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사망 1,403명 포함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피해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5.08 leehs@newspim.com |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야기한 피해와 그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고려할 때 제품의 제조·판매·유통 과정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책임소재가 철저히 규명돼야 하고 엄중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이 인멸·은닉한 자료는 대부분 애경산업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제품과 관련한 전문 자료이다"며 "제품 출시와 경위, 사실관계, 제조·유통 등 과정에서 애경산업 임직원들의 책임을 밝히는데 필수적인 자료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가습기살균제 관련 실체적 진실 규명에 일정 부분 지장을 초래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의 행위는 소비자가 겪은 고통을 외면하고 사회적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조직적·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 전 대표에 대해 "피고인은 자신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직원에게 지시한 행위가 인정됨에도 지속적으로 나머지 피고들에게 책임을 전가해 그에 합당한 엄중 처벌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또 양 전무에 대해서도 "201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 가습기살균제 대응 업무를 총괄하며 증거인멸·은닉 범행에 대한 고 전 대표의 의사를 실무자에게 직접 전달했다"며 "단순 중간결재자 지위로 인한 소극적 업무 처리였다고 볼 수 없어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만 고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대표이사 지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범행을 중단하거나 저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곤란했을 것이다"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심이 피고인들에게 선고한 양형이 합리적인 재량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고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2월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 검찰 수사에 대비해 애경산업에 불리한 자료를 숨기거나 없애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응 방안'을 마련해 증거 인멸·은닉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개시 직후 고 전 대표 등은 애경산업과 산하 연구소 등 직원들이 사용하는 업무용 PC와 노트북에서 가습기살균제 관련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하드디스크에 구멍을 뚫거나 노트북을 교체하는 등 방식으로도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같은 해 10월 국정조사에 대비해 비밀 사무실을 마련하고 별도의 태스크포스(task force·TF)팀을 꾸려 애경산업 서버를 포렌식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회에 제출할 자료를 정한 혐의도 있다. 이들은 국정조사 종료 후에도 관련 자료들을 잇따라 폐기하고 은닉했다.
1심은 고 전 대표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양 전무에게는 징역 1년을, 이 팀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명령했다.
1심은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죄책감 없이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듯 증거인멸 범죄를 저질렀다"며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애경산업 관련자들의 책임과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지장이 초래됐다"고 이들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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