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정통 보수정당의 부활을 꿈꾸며 야심차게 출범한 미래통합당이 출범 첫날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체면을 구겼다.
미래통합당 의원총회가 자유한국당 복당 행사처럼 연출되자 새로운보수당 의원들이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 갈등은 당 수뇌부의 긴급진화로 일단락됐지만 내홍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 의원총회 10여분 만에 분열 목소리
미래통합당은 18일 오전 국회에서 본회의를 앞두고 제1차 의원총회를 열었다. 미래통합당 공식 출범 이후 첫 의총이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의원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는 상견례 성격이 짙었다.
의총에는 기존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오신환·유의동·이혜훈·정병국 전 새보수당 의원과 이언주 전 전진당 의원, 김영환 전 국민의당 의원 등이 자리했다. 당 상징색인 분홍색 계열의 넥타이와 머플러를 한 의원도 많았다.
의총은 오랜만에 만난 의원들끼리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대다수가 과거 새누리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던 만큼 반가움도 더 컸다.
그러나 갈등은 의총 진행 불과 10여분 만에 빚어졌다. 당 지도부가 비(非)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연단으로 나와서 인사말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2.18 leehs@newspim.com |
◆ 정병국 "통합했는데 왜 우리만 인사하나"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정병국 의원은 강한 어조로 당 지도부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정 의원은 "우리는 서로 어려운 결단을 통해 이 자리에 왔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은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따로 인사하는 자리를 만든 것은 심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가 된 것인데 왜 우리만 따로 나와서 인사를 해야 하느냐"며 "인사를 하려면 다같이 해야 한다. 당 지도부가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원의 갑작스러운 작심발언에 좌석에서 듣고 있던 기존 한국당 의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굳은 표정으로 정 의원의 발언을 지켜봤고, 일부는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정 의원에게 박수를 보냈다.
정 의원의 발언 이후 심재철 원내대표는 "다같이 일어나서 인사하자"고 권유했다. 결국 모든 의원이 앞으로 나와 서로 마주보며 인사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혜훈 의원은 "모두 힘 합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자"고 짧게 끝냈다. 오신환, 유의동, 이언주 의원은 인사말을 생략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2.18 leehs@newspim.com |
◆ "겉보기엔 새 집인데 집주인은 그대로"
일각에서는 새보수당 측이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터뜨린 것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 의원의 발언을 돌발 사태가 아닌 의도된 발언으로 보는 것이다.
새보수당은 4·15 총선 승리를 위해 마지 못해 통합열차에 올라타긴 했으나 아직 통합당과 완전한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는 못한 상태다.
새보수당은 그동안 통합 원칙으로 "새 집을 지으려면 당연히 헌 집을 허물어야 하고, 새 집의 주인도 새 사람들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주축은 여전히 한국당이다. 당대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이어받았다. 최고위원 역시 기존 한국당 최고위원 8명 모두 그대로다.
다만 통합당은 기존 최고위원 8인에 원희룡 제주지사 등 4명의 비한국당 최고위원을 추가해 총 12인 체제로 구성했다. 새로운 지도부가 아닌 흡수통합 형태로 지도부가 꾸려진 셈이다.
이를 두고 한국당이라는 큰 집에 새보수당이 '얹혀사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당과 당대 당 통합을 주장했던 새보수당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 이준석 "유승민, 이런 형태의 통합에 부정적"
통합당에 대한 새보수당의 불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유승민 새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의 행보다. 그는 보수통합을 위해서라면 대승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 위원장은 전날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 의원의 측근인 지상욱 의원과 새보수당의 책임대표를 지낸 하태경 의원 역시 불참했다. 이들은 이날 의총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혜훈 의원은 "유 위원장께서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일체의 공식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출범식 불참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새보수당 출신의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유 의원이 이런 형태의 통합에 대해 다소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02.18 leehs@newspim.com |
통합당 내부에서는 일찌감치 갈등의 씨앗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합의 모습이 아닌 분열의 모습으로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당 출신 한 통합당 의원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선거를 앞두고 통합하는 과정에서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초 치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의총 과정에서 정병국 의원의 발언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느냐'는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없었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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