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회사가 올해 연차유급휴가(이하 연차휴가) 15개를 이달 안에 사용하라면서 연차 신청서를 제출하라더군요. 강제는 아니라지만 갑을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직원 입장에서는 사실상 강요로 느껴집니다. 연차는 제가 원할 때 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사가 시기를 지정해 연차 소진을 강요하는 것은 위법 아닌가요?"
서울 한 5성급 호텔에서 일하는 A씨의 얘기다. A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올해 연차휴가를 3월 내에 소진할 방안을 담은 '연차사용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영업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내려진 조치다. 회사 측은 물론 연차휴가 사용이 강제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권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A씨는 최근 상황에서 사측이 전체 직원을 상대로 이같은 지침을 내려 보낸 것이 사실상 '강제'가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실상 여행 등이 어려운 상황에서 원치 않는 연차 소진을 강요하는 것이 사측의 이른바 '갑질'로 느껴진다고도 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관광업계를 비롯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으면서 이같은 고용주와 근로자 간 법적 갈등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우선 A씨의 사례와 같이 사측이 코로나19로 인해 근로자들에게 연차휴가 소진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다.
연차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정 수준의 근무 조건을 만족하는 근로자에게 사용자가 매해 주도록 정해진 유급휴가다. 최근 개정된 근로기준법 60조 1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연차휴가를 주어야 한다. 또 연차휴가는 근로 연수가 2년씩 늘어날 때 마다 1일씩 늘어난다.
특히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이 연차휴가를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기지정권'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60조 5항은 '사용자는 관련 법 규정에 따른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행정해석을 통해 '연차휴가의 사용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실시할 수 없다'는 지침을 정해두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감염으로 인한 입원이나 유증상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될 경우 사측이 연차를 모두 소진해야 유급휴가(유급병가)를 쓸 수 있도록 한 경우 역시 특정 시기에 연차휴가를 강요하고 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돼 근로기준법과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연차휴가와 관련한 예외도 있다. 근로자가 신청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사실을 사용자가 입증하면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는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이다. 이 역시 관련법 60조 5항에 규정돼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최근 코로나 사태가 사용자의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에 사용자와 근로자가 회사 운영 상황에 맞게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는 것이 무엇보다 현명한 대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동법 전문가인 서초동 한 변호사는 "연차유급휴가를 법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 60조의 핵심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주어야 하고 이 시기나 연차휴가 사용을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사용자가 연차휴가 사용을 강제하면 법률 위반"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다만 코로나의 경우 직원 1명의 감염만으로 다른 직원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사업장 폐쇄 등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앞서 언급된 사례와 같은 관광업계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 심각한 영업 위기가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사측과 근로자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합의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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