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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이 만든 '키코 혼란'...은행 '거부'에 난감

기사등록 : 2020-03-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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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산업 '불수용', DGB대구·하나·신한 '재연장'…우리만 '수용'
윤 원장, 취임 후 재조사…"은행 평판 높이는데 도움" 힘 실어
배임 아니다?…산업은행 "자체 법률자문 결과 '배임' 가능성 결론"
DLF, 라임 등 잇단 사태 …작년 국감장서 "키코 탓 놓쳤나" 지적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은행권은 소멸시효가 지난 '키코(KIKO)' 사건에 배상하면 배임이라며 분쟁조정안 수용을 거부하거나, 수개월째 결정에 뜸을 들이고 있다. 사실상 거부로 분위기가 잡히면서 취임 이후 키코 배상을 밀어붙여온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우리은행만 키코 배상안을 수용했고 씨티·산업은행은 불수용, DGB대구·하나은행은 고민할 시간을 더 달라는 입장을 금감원에 각각 전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주총회 등을 감안해 다음달 6일까지 은행들에 시한을 연장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키코 배상안 결정시한을 연장해준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2020.03.06 milpark@newspim.com

◆ "은행,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해줬으면…"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외환파생상품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급변동해 많은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다. 2013년 불공정거래가 아니라고 대법원 판결이 났지만, 윤 원장이 취임 후 재조사를 지시하며 재점화됐다. 이 때문에 윤 원장의 '역점사업'으로 꼽힌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1년6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작년 12월 키코 피해기업 4곳에 대한 배상비율을 15~41%, 총 배상금액을 255억원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금감원 분쟁조정 수용에는 강제성이 없는 데다, 키코는 법적시효가 지나 분쟁조정 결렬 후 소송을 할 수 없었다. 즉, 은행이 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피해기업이 키코 배상을 받을 방법은 없다는 얘기다.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시효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10년이나 기업이 문제를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다.(빠른날 기준) 키코 계약은 2007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체결돼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금감원도 알고 있었다. 이에 금감원은 분쟁조정 결과발표 당시 "외국에서도 키코와 유사한 피해에 대해 제소기간 경과 여부와 상관없이 배상한 사례가 있다", "4곳에서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면 배상금을 뒤늦게 지급하는 것이 배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은행들에 키코 배상안 수용을 압박했다.

윤 원장도 이후 만들어진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키코는 은행이 도움을 구한 고객에 크게 손실을 입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을 망하게 한 것"이라고 꼬집은 뒤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은 고객을 도와주는 일이기에 은행 평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금융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은행들이 대승적으로 수용해줬으면 좋겠다"고 힘을 실었다.

◆ 배임 우려 여전…"올해의 성과" 자화자찬 무색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윤석헌 금융감독원 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9.10.08 alwaysame@newspim.com

하지만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 발표 후 약 3개월이 흐른 지금, 은행들의 호응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배임죄' 혐의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마저도 법률자문을 따로 받은 결과, 금감원이 배상 근거로 삼은 기준인 적합성의 원칙, 설명의무 등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법리적 다툼이 있을 수 있고, 은행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사정은 다른 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윤 원장은 머쓱해지게 됐다. 윤 원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키코 분쟁조정을 올해의 성과로 치켜세웠다. 그는 "키코를 분쟁조정 아젠다로 올린 것은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은행들과 협조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사실상 거부로 돌아서면서 '미완의 성과'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윤 원장에 키코 성과가 중요한 것은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등 잇단 금융사고에서 금감원의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질타가 거센 상황이어서다. 이 과정에서 화살은 키코에도 향했다.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윤 원장에 "키코에만 집중하다 보니 DLF 문제를 모르고 지나간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키코까지 성과가 나지 않으면 면이 살지 않는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들은 처음부터 키코 배상에 부정적이었지만, 감독당국 눈치를 보느라 바로 거부하지 못한 것"이라며 "DLF 제재심과 관련해 눈치를 본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다른 은행들은 무리하게 키코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특히 산업은행이 거절하면서 다른 은행들도 키코 배상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금도 법률자문에서 배임 가능성에 대한 해석이 다르듯, 시간이 흐르면 다른 기준으로 경영진에 잘못했다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특히 분쟁조정을 수용하면, 자율조정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은행이 부담할 액수도 만만치 않다. 은행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이 키코 관련해 추가배상을 해야할 기업은 145곳, 이들의 피해금액은 1조원 가량이다. 여기에 금감원 분쟁조정위가 제시한 손해배상 기준을 적용하면 은행이 부담해야할 배상금액은 약 2000억원 초반대로 알려졌다.

milpar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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