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전화번호 남기고 가니 무슨 일이든 들어오면 바로 연락주세요."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A(67·여) 씨가 직업소개소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빌딩 화장실 청소 일이라도 있나 싶어 직업소개소 문을 두드렸던 A씨는 "일이 없어 우리도 죽겠다"는 직업소개소 사장의 하소연만 듣고 빈 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일 서울 영등포구 H인력사무소에 만난 A씨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지난해 초부터 20만원 넘는 기초노령연금이 나오기 시작하며 일을 줄였던 A씨가 1년여 만에 직업소개소를 다시 찾은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마을버스 정류장 청소와 신축 빌딩 입주 청소 등을 하던 A씨는 지난 2월부터 청소 일 등이 줄어들면서 급격히 주머니 사정이 나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주는 27만원 수입도 이달 뚝 끊겼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정부가 한시적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중단해서다. 현재 월 수입이 기초노령연금뿐인 A씨는 "코로나19가 빨리 지나가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서울 지하철 1호선 신길역 근처에 있는 직업소개소 S사에 붙어 있는 일자리 소개 [사진=한태희 기자] 2020.03.20 ace@newspim.com |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일용직 노동자는 A씨뿐만이 아니다. 일용직 일자리는 지난 2월부터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일용직 노동자는 전년도 동기간과 비교해 10만7000명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일용직 근로자 감소폭이 지난 2월 확대됐다"며 "시설파견업과 숙박음식업, 건설업 등에서 일자리가 준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연결시켜주는 직업소개소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20년 넘게 서울 지하철 1호선 신길역 근처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박모(74) 씨는 이달 수입이 단 한 푼도 없다. 지난 1일부터 19일까지 A씨가 일자리를 소개해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일자리 소개 실적이 없으니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의 10%를 받는 수입도 이달 0원이다.
박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이라도 나오면 해당 건물을 방역하고 폐쇄하고 있다"며 "빌딩 관리하는 곳에서 코로나19를 걱정해서인지 외부인이 건물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 청소 일자리는 없고 식당이나 소규모 단지 아파트 경비 일자리도 없다"며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는 많은데 일할 사람을 소개시켜달라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오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자칫하면 공사 중단이나 임금 체불 등 일자리 감소에 따른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는 "건설 현장 일은 옥외 작업이라서 방역 차원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공사가 중단된 사례 이외 피해가 없다"면서도 "다음 달이 되면 건설 기계를 하는 분을 중심으로 임금 체불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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