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강타에 자산시장이 패닉에 빠진 가운데 펀드 환매 대란에 대한 우려가 월가에 번지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 현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주식펀드는 물론이고 채권펀드와 헤지펀드까지 자금 엑소더스가 두드러진다.
월가의 펀드 매니저들은 환매 대란을 경고하고 있다. 패닉 매도가 자산 가격의 연이은 급락을 일으키는 한편 펀드시장의 유동성 경색까지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23일(현지시각) 시장조사 업체 EPFR 글로벌에 따르면 최근 한 주 사이 미국 주식펀드에서 230억달러의 자금이 이탈했다. 이는 연초 이후 두 번째로 높은 '팔자'에 해당한다.
상황은 채권도 마찬가지. 최근 한 주 사이 채권 뮤추얼 펀드 및 상장지수펀드(ETF)에서 1090억달러의 자금이 이탈했다.
이는 사상 최고치에 해당한다. 정크본드 펀드에서 자금이 썰물을 이룬 가운데 투자등급 채권 펀드 역시 대규모 매도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블룸버그는 헤지펀드 업계도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에 된서리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주요 상품의 포트폴리오에서 많게는 두 자릿수의 자산 감소가 발생했다.
3월 들어 첫 2주 사이에만 LMR 파트너스의 대표 상품에서 운용 자산 규모가 12.5% 줄었고, 보포스트와 캐피탈 포 크레딧 오퍼튜니티 펀드가 각각 8%와 6.9%의 자산 감소를 나타냈다.
시타델과 카풀라의 간판급 펀드 역시 같은 기간 각각 5.2%와 3.0%의 자산 감소를 나타냈다. 헤지펀드 업계는 시장 패닉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저가 매수 기회라며 고객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팔자'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실정이다.
뉴욕증시의 S&P500 지수가 지난 2월 고점 대비 35% 폭락하며 베어마켓에 진입했고, 채권과 원자재, 심지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금값까지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BNY 멜론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리즈 영 시장 전략 담당 이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현금 이외에 어떤 자산도 믿을 수 없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극심한 심리적 공포와 이에 따른 패닉 매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 등 긴급 처방에 나섰고,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책이 추진 중이지만 금융시장에 추세적인 반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도이체방크의 올리비에르 하비 매크로 전략가는 투자 보고서에서 "과거에는 은행권이 위기의 진원지였지만 이번에는 펀드 업계가 도화선을 제공할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펀드 매니저들은 대규모 환매 사태에 대비해 일정 부분 유동성을 확보해 두고 있지만 말 그대로 환매 대란이 불거질 경우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례 없는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됐고, 이로 인해 10여년에 걸쳐 시중 자금이 위험자산으로 극심한 쏠림 현상을 보인 점을 감안할 때 환매 규모와 이에 따른 충격 역시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장기 저금리에 따른 고위험 베팅이 오랜 기간 지속됐고, 이 때문에 펀드 업계는 물론이고 연기금과 보험업계까지 자금 썰물과 자산 가격 급락에 따른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씨티그룹도 보고서에서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위태로운 상태"라며 "유동성 여건 악화와 맞물려작은 악재도 패닉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극심한 변동성과 주가 폭락에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휴장 및 거래 시간 단축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월가는 오히려 필리핀과 같은 금융시장 휴장이 최악의 결과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사이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한편 잠재적인 리스크가 악화될 여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한편 골드만 삭스가 최근 대규모 환매 사태에 따라 머니마켓펀드(MMF)에 10억달러의 자금을 공급하는 등 월가는 이미 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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