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국제 유가가 말 그대로 자유낙하를 연출했다. 일부 비관론자들이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를 점치는 등 잿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원유 선물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물인 5월 인도분이 21년래 최저치로 내리 꽂혔고, 이 때문에 사상 최대 규모의 콘텡고가 발생했다.
러시아 석유업계에 2월 생산량 대비 20% 감산을 지시하는 등 각국이 대응에 나섰지만 이른바 팬데믹에 따른 유가 하락에 제동을 걸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원유 배럴[사진=로이터 뉴스핌] |
중동 일부 산유국들의 채권 발행에 제동이 걸리는 등 '유가 쇼크'로 인한 파장이 광범위하게 번지는 양상이다.
20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장중 한 때 WTI가 40% 폭락하며 배럴 당 1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21년래 최저치에 해당한다.
이날 장중 WTI의 최저치는 배럴당 10.77달러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서 거래됐다.
지난주 이른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대대적인 감산에 합의했지만 수급 교란에 따른 유가 하락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브렌트유 역시 장중 7% 이상 동반 급락하며 한 때 배럴당 26달러 선을 위협했다. 근월물 가격이 가파르게 추락한 데 따라 6월 인도분 대비 스프레드가 역대 최고치로 상승, 전례 없는 콘탱고가 연출됐다. 그만큼 근월물이 원월물 대비 크게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흐리다. 한 원유 헤지펀드의 피에르 안듀란드 펀드매니저는 트윗을 통해 "국제 유가의 바닥을 점치기 어렵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원유 수요가 실종됐고, 재고 물량이 넘쳐나면서 저장 탱크와 배럴, 송유관까지 빈 공간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시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유 트레이더들의 거래 현황은 이 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실어 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텍사스의 트레이더들의 매수 호가는 배럴당 2달러까지 곤두박질 쳤다.
소위 OPEC 플러스를 중심으로 각국은 적극적은 대응에 나섰다. 이날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석유업계에 대규모 감산을 지시했다. 산유량을 2월 기준 20% 축소하라는 얘기다.
셰일 업계를 필두로 미국 석유업계도 비상 대응에 돌입했다. 지난주 기준 미국 석유업체는 원유 시추 설비의 13%를 '셧다운' 했다.
베이커 휴스에 따르면 업계의 원유 굴착 장비 가동 역시 최근 1개월 사이 3분의 1 이상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원유 시장 쇼크를 진화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UBS 웰스 매니지먼트의 지오반니 스토누보 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유가 폭락을 진정시킬 만큼 감산을 신속하게 추진하기는 어렵다"며 "러시아와 석유전쟁 과정에 사우디 아라비아가 생산한 원유는 5~6월까지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 삭스 역시 최근 보고서를 내고 국제 유가가 내림세를 지속한 뒤 상당 기간 사상 최저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오일 쇼크는 금융시장 전반으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만과 바레인 등 재정건전성이 낮은 산유국들을 중심으로 채권 발행이 줄줄이 막히는 상황이다.
외환시장도 된서리를 맞았다. 러시아 루블화가 장중 1.5% 급락하며 3주간의 랠리를 종료했고, 멕시코 페소화도 2% 선에거 급락했다.
소시에떼 제네랄의 키트 저크스 전략가는 투자 보고서에서 "지구촌 곳곳에 넘쳐나는 기름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며 "관련 통화가 하락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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