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봄이 기자= 금융투자업계의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이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 기금형 퇴직연금과 디폴트옵션 도입 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새로운 국회에서 법안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업계 고심이 깊다.
23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발의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 개정안'(기금형·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이 오는 29일 자동 폐기된다. 근로자 퇴직연금 수익률 향상을 위해 지난해 11월 발의됐으나, 상임위에서 한 차례 논의 이후 통과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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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퇴직연금을 특정 연금 사업자에게 모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수탁법인이사회)를 설립해 운용 방향을 결정하고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는 형식이다.
디폴트 옵션은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특별한 운용 지시가 없을 경우 운용사가 자산분배형 적립금 방식으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둘 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제도로 꼽힌다.
제도 도입이 절실한 이유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다.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지난 몇 년 간 1~2%대에 머물렀다. 5년 간 연평균 수익률은 1.88% 정도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퇴직연금 펀드는 연초 이후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테마유형 가운데 퇴직연금(403개)으로 분류되는 펀드의 올해 수익률은 전날 기준 -2.67%를 기록했다. 지난 1년, 2년의 평균 수익률도 각각 0.74%, -1.40%로 저조한 편이다.
퇴직연금 펀드에 자금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연초 이후 총 6366억원이 유입됐고, 최근 1년 동안 1조8327억원이 들어왔다. 투자 자금이 몰려오면서 운용 설정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퇴직연금 운용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익률 향상을 위해 적극적이고 장기적 투자가 있어야 만족스러운 은퇴자산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인들이 401K(퇴직연금)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적극적 투자가 가져온 결과를 집단적으로 학습해왔기 때문"이라며 "대부분 투자자들이 펀드 등을 통해 미국주식과 해외 주식에 투자하면서 경제 성장의 과실을 투자 자산으로 실현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전자산보다는 주식펀드, 혼합펀드, 생애주기펀드(TDF) 등 위험자산을 중심으로 연금을 운용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최근 TDF 투자가 늘어나면서 주식형 규모가 확대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기금형 퇴직연금과 디폴트옵션 등 정부의 퇴직연금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주식형 투자 비중도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운용사들이 선보인 TDF는 은퇴시점을 설정해 생애 주기에 따라 자산 분배를 조정하는 금융상품이다.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 초반에는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두고,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채권펀드 등 안전자산 비중을 점차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자동 운용 상품으로 TDF가 유력하게 떠올라 업계에서도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TDF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수익률 문제는 몇 년간 논의만 이뤄지고 제도 개선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새로운 국회에서 진전이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퇴직연금법 개정안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는 디폴트옵션 제도와 관련해 "퇴직금의 수익성 측면에 집중할 경우, 이로 인한 퇴직연금 운용의 불안정성·위험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다른 나라의 도입사례와 문제점, 구체적인 제도 운영 방식, 가입자의 수급권 보호 및 노후보장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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