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20-05-25 16:28
[서울=뉴스핌] 김사헌 기자 = 홍콩 시민이 중국의 보안법 제정 저지를 위한 시위에 나서자, 경찰 당국이 '폭도'라고 부르며 곧장 진압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이라 마찰의 중심으로 부상한 홍콩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 가운데 이번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은 우연한 일회적 시도가 아니라, 오랫 동안 고민하고 벼려온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 정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란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뉴욕타임스 베이징 지국의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국장은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은 용의주도하게 국제사회의 비난이란 위험을 고려한 뒤 이제는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엄청난 지정학적인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가정에 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중국의 지배 강화, 면밀하게 준비한 결과물
마이어스 지국장은 "홍콩의 입법 절차를 무시하고 우회하여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기로 한 중국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은 두려워하지 않는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미래의 중국: 민주주의냐 독재냐>의 저자인 홍콩 침회대학의 장-피에르 카베스탄 교수는 "이전에는 중국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소프트파워를 전세계에 심어나간다는 그런 판단도 존재했지만, 시 주석과 함께 그런 시절은 끝나버렸다"고 말했다.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추구해 온 시진핑 주석은 국수주의 테마를 끌어들이면서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 초기 확산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책임론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게 했지만, 아직도 막대한 경제적, 외교적 과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홍콩 시민들의 새로운 저항은 홍콩의 금융중심지 역할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이며, 관영 언론과 정부 관료들은 즉각 미국과 다른 나라를 비난하면서, '분리주의자'와 '테러리스트'인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것은 공산당의 힘을 빼놓으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 트럼프, 코로나19 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듯
미국은 지지않고 중국에 대한 교역과 기술분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베이항대학 법학과의 톈페이룽 교수는 이에 대해 "사실상 미국은 불에다 기름을 한 통씩 붓고 있는 셈"이라며 "중국 정부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 안보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주장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3일 "미국과 중국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아메리카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미국 내 인사들을 비난했다.
마이어스 지국장은 "이번 중국의 홍콩에 대한 규제 강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강제로 복속한 것과 같은 파장을 낳고 있다"면서 "한 때 국제적인 고립 상태에 있기도 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크림 반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 주석의 시도는 주요 경쟁국인 미국이 혼란에 빠져서 많은 여지를 주고 있을 때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2047년까지 홍콩에 자유를 보장하는 조약에 서명한 영국은 호주와 캐나다 등과 함께 '심각한 우려' 성명을 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별다른 언급이 없다"고 덧붙였다.
◆ '일국양제' 둘러싼 논란보다는 미중 관계 종말이 핵심
한편, 이번 홍콩 사태는 '일국양제'를 둘러싼 흑백 논리보다는 미국과 중국의 대국 관계가 끝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태미 탐 편집국장은 24일 자 기사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중국은 2047년까지 홍콩의 사법적 자율권을 인정하면서 한 나라 두 체제 시스템을 존중한다는 입장인데, 실제로는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들 사이에 매우 큰 정서적 차이가 존재하고 갈수록 그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콩 내에서 친중파와 반중파가 갈라져 있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러한 홍콩과 중국 본토의 동떨어진 정서는 오랜 기간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관계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SCMP의 탐 국장은 "중국 본토인에게는 단지 홍콩이 '한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하면 끝날 문제이지만, 홍콩인들에게는 '두 체제의 종말은 과연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식으로 올까'가 관심이다. 따라서 양자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다"라며 "홍콩과 중국 본토 간의 단순화된 흑백논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국수주의적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애국을 강조하는 중국인들 사이의 사이가 갈수록 멀어지면서, 미중 신대국관계가 종말에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전 모간스탠리 아시아회장을 역임한 스티븐 로치 교수는 "무역전쟁에 이어 코로나19 전쟁까지 성난 두 나라가 빠져나갈 수 없는 비난 게임에 갇힌 모양새"리며, "상호간 비난이 양국 관계의 단절이란 판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냉정한 논리적 판단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관계의 파열은 깊은 경제적 의존 관계에 있는 두 나라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 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쟁점이 아니라 신 냉전을 초래하는 세계적 힘의 균형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