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친생자 출생신고 후 상당 기간 관계가 단절됐어도 이후 정서적 유대관계가 이어졌다면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양어머니인 서모(63) 씨의 여동생이 양딸 배모(40) 씨를 상대로 제기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재판부는 "서 씨와 피고의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는 2000년경 이후 다시 회복됐다고 충분히 볼 수 있다"며 "피고는 입양에 갈음한 출생신고를 묵시적으로 추인했고, 이들 사이에는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의 실질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이 사건의 피고처럼 어릴 적 자신을 양육했던 양모와 일정 기간 헤어졌다가 성년이 돼 재회한 경우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동거 또는 감호·양육 여부를 주된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어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 내지 정서적 애착 그리고 성년인 양자와 양모 각자의 재회 당시 처지 등을 고려해 형편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며 "서로를 대하는 태도 및 그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관계 등에 보다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씨가 이혼 후 재혼을 통해 다른 양자를 양육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양친자 관계를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며 "양부의 양육을 받으며 성장한 미성년자인 피고로서는 서 씨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또 "피고와 서 씨가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가 계속 유지되지 못한 데에는 피고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서 씨도 가족관계등록부에 친딸로 등재된 피고에 대해 파양에 갈음하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 등을 제기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은 "피고는 서 씨와 왕래를 재개할 무렵 친모가 아님을 알게 됐던 것으로 보임에도 왕래를 지속했고, 소송 중에도 서 씨를 어머니로 생각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며 "결국 피고와 서 씨 사이에는 양친자 관계를 존속시키려는 의사 즉 입양의사의 합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배 씨는 1980년 3월 14일 출생 당시 배 씨의 생모가 양육권을 포기하면서 보육시설에 맡겨지거나 입양될 처지에 놓였다. 아이가 없던 서 씨 부부는 이웃을 통해 배 씨를 키우기로 하고 1980년 10월 21일 친생자로 출생신고했다.
배 씨가 만 5세가 되는 1985년 10월 5일 서 씨는 남편과 이혼했고 배 씨는 양부에게서 키워졌다. 서 씨와 배 씨는 만남이 없다가 2000년 경 무렵부터 다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왕래를 시작했다.
이후 서 씨는 2015년 8월 21일 사망했고 서 씨의 여동생은 배 씨를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배 씨가 서 씨의 친생자가 아니며 약 30년 동안 아무런 유대관계 없이 지내는 등 양친자 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배 씨는 만 15세 이후 입양에 대해 묵시적으로 인정해 입양의 효력이 발생했다고 반박했다.
1심은 "피고에 대한 출생신고가 양친자 관계를 공시하는 기능을 발휘한다"며 "서 씨가 피고와의 신분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사망한 이상 제3자에 불과한 원고가 이들의 양친자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서 씨와 피고 사이에 혈연적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이 명백하다"며 "친생자 출생신고로 입양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단했다.
2심은 "피고가 자신에 대한 출생신고가 무효임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입양에 갈음하는 출생신고를 묵시적으로 추인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서 씨가 이혼할 무렵부터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는 단절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가 성년이 된 이후 간간이 왕래가 있었어도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 등 입양의 실질적인 요건을 갖추게 됐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이 경우 무효인 친생자 출생신고는 입양신고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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