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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리의 야금야금(金)] 79세 치매노인에도 판매…탐욕이 부른 'DLF 사태'

기사등록 : 2020-06-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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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금감원 첫 민원…우리·하나은행 판매 비중 96%
심의 패스, 반대의견 위원 교체…윤석헌 원장 "금융사 갬블한 것"
'중징계' 손태승 이어 함영주 '소송'…은행 법인도 이의 제기
금융당국 대책 발표…업계 "욕심 버리지 않는 한 재발" 전망

[편집자] '야금(冶金)'은 돌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금융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첫단부터 끝단까지 주목받는 건 몸집이 큰 사안뿐입니다. 야금 기술자가 돌에서 금과 은을 추출하듯 뉴스의 홍수에 휩쓸려 잊혀질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사고를 되짚어보는 [한국금융의 뒷얘기 야금야금] 코너를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최근 선보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후 개선된 건 있는지 등 한국금융의 다사다난한 뒷얘기를 격주 금요일 만나보세요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에 해외 주요국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이하 DLF) 불완전판매를 제보하는 민원 한 건이 들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원은 한 건, 두 건 빠른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이를 인지한 시점은 첫 민원이 들어온지 3개월이 지난 7월이었다. 8월이 되자 법무법인 한누리에서 DLF 판매사에 불완전판매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DLF 사태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 없다"

문제가 된 DLF 상품은 영국·미국 파운드화 이자율 스와프(CMS) 금리 또는 독일국채 10년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했다. 금리가 만기까지 일정 구간에 머무르면 연 3.5~4.0%의 수익률을 보장하지만, 기준치 아래로 내려가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고위험 금융 투자상품'이다.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1% 손실도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했는데…."(DLF 피해자) 그러나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독일과 영국 국채 금리가 폭락했고 투자자들은 원금 대부분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7일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파생결합증권(DLS), 파생결합펀드(DLF) 판매잔액은 총 8224억원이다. 우리은행(4012억원), 하나은행(3876억원)이 판매한 사모 DLF 비중만 95.9%에 달했다. 금감원은 DLF 상품 설계·제조·판매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작년 8월 말 판매사인 우리·하나은행을 비롯해 증권사, 자산운용사에 대한 현장검사에 나섰다. 그 사이 막대한 손실 확정을 속속 받아든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집회에 나섰고, 우리·하나은행에 대한 집단소송을 본격화했다.

◆ "무리한 판매목표 제시, 달성률 매일 점검"

사태가 심상치않자 이례적으로 금감원도 10월1일 중간 검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상품 설계, 제조, 판매 전 과정에서 금융사가 투자자 보호보다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모습이 발견됐습니다."(원승연 당시 금감원 부원장)

은행은 만기, 손실발생 금리수준, 약정수익률 등 상품의 기본조건을 결정한 후 증권사에 DLS 발행을 요청했다. 원하는 조건으로 설계된 DLS를 펀드로 편입, 운용할 자산운용사도 적극 찾았다. 내부상품위원회 심의는 거치지도 않았다.(심의 비중 1% 미만) 심의를 거쳐도 반대의견을 낸 위원을 교체해 찬성의견을 받았다. 영업점에 무리한 판매목표를 부여하고 매일 달성률을 점검해 판매를 압박하기도 했다. 핵심성과지표(KPI)는 여타 은행보다 비이자수익 배점을 높이고 소비자보호 배점을 낮췄다. '손실률이 낮다'는 점을 강조한 사례를 우수전략으로 선정해 영업점에 전파하고 '정기예금 선호고객'을 집중 공략하도록 유도한 일도 적발됐다.

이 탓에 DLF는 같은 달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하나은행이 금감원 현장검사 전 DLF 관련자료를 삭제했다" 등의 폭로가 현장에서 잇따라 터졌다. 윤석헌 원장은 "금융회사가 일종의 갬블(도박)을 한 것이다",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금융회사가 책임을 져야한다" 등의 강경한 발언을 연신 쏟아냈다. 물론 금융당국과 금융사를 향한 의원들의 질타도 현장을 빽빽이 채웠다.

◆ 'CEO 중징계'…공은 법원으로

그해 12월 금감원이 분쟁조정 6건(우리·하나은행 각 3건)에 대한 배상비율을 발표했다. 배상비율 구간은 우리은행 40~80%, 하나은행 40~65%이다. 배상비율 80%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투자경험이 없고 난청인 79세 치매환자에 DLF를 불완전판매한 경우였다. 은행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 부실책임'이 처음으로 배상비율에 반영된 것도 큰 특징이다. "상품 출시부터 판매까지 심각하고, 명확한 내부통제 과실이 발견됐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뤄져서 내부통제 부실책임을 가중했습니다."(김상대 당시 금감원 분쟁조정2국장) 두 은행은 분쟁조정 대상에 대한 배상을 완료한 후 올 1월 자율조정(분쟁조정 신청하지 않은 DLF 구입 고객)에 착수했다. 자율조정도 최근 대부분 배상을 완료한 상태다. 

하지만 DLF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올 1월 세 차례의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당시 은행장)에 대한 '중징계(문책경고)'를 확정했다. 이어 3월 금융위원회에서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각각 197억원, 168억원의 과태료와 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를 제한하는 '업무 일부정지 6개월' 부과를 결정했다. 연임을 앞뒀던 손태승 회장은 금융위 결정 즉시 법원에 문책경고 조치 취소 청구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문책경고가 확정된 임원은 잔여 임기만 채우고 연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기 유력한 하나금융 회장으로 꼽히는 함영주 부회장도 장고 끝에 지난 2일 소송을 냈다. 두 은행 법인도 지난달 금융위에 "과태료가 과도하다"며 이의 제기를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 절차를 밟는다.

◆ 은행도, 당국도 잇단 대책 발표

DLF 사태로 많은 보완책도 쏟아졌다. 금융당국은 지난 연말 은행의 고난도 사모펀드·신탁(파생상품 내재·원금손실 가능성 20~30% 이상) 판매금지,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 1억원에서 3억원 상향, 경영진 책임 강화 등이 골자인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다만 고난도 사모펀드·신탁 판매는 은행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초자산이 주가지수이고 공모로 발행됐으며 손실배수 1이하 파생결합증권을 편입한 신탁(ELT)에 한해 허용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판매할 수 있는 한도도 34조원으로 제한했다. 또 금감원에선 올초 소비자보호조직을 대폭 확대하고 상시감시체계를 강화하기로 했으며, 국회에선 9년간 잠들어있던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올해 3월 통과시켰다. 우리·하나은행은 금융 투자상품 리콜제 도입, KPI 고객수익률 배점 확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상품선정위원회 구성 등의 후속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앞으로 비슷한 사태는 또다시 일어날 것이란 시각이 상당하다. "DLF 자체는 잘못된게 아니에요. 문제는 은행들이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거죠. 투자자들도 파생상품에서 배상하라 해서는 안되구요. 은행과 투자자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비슷한 일은 재발할 겁니다."(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milpar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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