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고은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서 대형 금융위기로 번질 뻔했다. 한때 환율까지 흔들었던 증권사 ELS 마진콜(추가증거금 요구)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의 부도까지 부를 뻔 했던 3월의 위기는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이 총출동해 막았다. 그러나 재발방지를 위한 ELS 관련 대책은 아직까지 고심중이다.
1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 주요 증권사의 ELS 발행규모는 미래에셋대우 14조3380억원, 삼성증권 13조3864억원, 한국투자증권 13조485억원, KB증권 11조4271억원, NH투자증권 8조4651억원이다. 특히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8년에 비해 ELS 발행규모를 3~4조원 가량 급격히 늘렸다.
문제는 이중의 상당부분이 자체헤지 방식으로 운용됐다는 점이다. 수수료를 지불하고 리스크를 해외 증권사에 이전할 수 있는 백투백 헤지 방식과 다르게 자체헤지는 증권사가 직접 해외 선물이나 옵션 상품에 자금을 넣어 상품을 운용한다. 이때 해외 거래소에 일정비율의 증거금을 내는데, 주가가 폭락하면서 해외 거래소가 대규모 증거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원화가 아닌 달러화만 받겠다고 못을 박았다.
여의도 증권가 / 이형석 기자 leehs@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파생결합증권(ELS·DLS) 발행잔액 106조원 중 자체헤지 규모는 62조1000억원으로 59%에 달했다. 자체헤지 규모는 2018년 51%, 2019년 52%로 증가 추세에 있다가 올해 59%로 급격히 늘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아끼고 운용 수익까지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자체헤지 비중을 늘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와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인해 늘어난 자체헤지 ELS 비중은 증권업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분기 중 국내 증권사의 파생결합증권 발행·운용 손익은 9067억원 적자로, 금감원 표현에 의하면 "2019년 이익규모(7501억원)를 초과하는 대규모 적자전환"이다.
수조원의 자체헤지 ELS를 들고 있던 일부 대형증권사는 하루에 1조원이 넘는 마진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증권사들이 급하게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채권 매각에 나서며 금리가 급등했고 단기자금시장 신용경색 우려가 불거졌다. 환전수요도 급증하며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기도 했다. ELS가 진앙이 돼 금융시장 전체를 흔들었다.
한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기자와 가진 미니포럼에서 "달러화를 구하지 못한 증권사는 부도 직전까지 갔다"고 언급했다. 증권사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ELS를 많이 들고있던 대형 증권사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금융위원장이 직접 증권사 사장을 불러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이유를 물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국내 증권사 중 1분기 순손실을 낸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KB증권, 한화투자증권, KTB투자증권, SK증권, 교보증권 등 6개다. 이중 대형 증권사로 분류되는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은 각각 1338억원과 147억원 순손실을 냈다. 삼성증권도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대비 87% 줄었지만 간신히 순손실은 면했다.
대형 증권사의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당시 금융당국이 총출동했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직접 증권사에 달러화가 얼마나 부족한지 물었고, 한국은행은 증권사를 대상으로 무제한 환매조권부채권(RP) 매입을 시작했다. 매주 1회 정례적으로 한도없는 전액공급 방식으로 RP를 매입했는데 이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정책이었다.
급한 불이 꺼지고 나자 금융위원회는 ELS 총량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ELS 발행규모를 자기자본의 몇배 수준으로 제한하는 안이다. ELS 마진콜 사태가 다시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인식 아래서였다. 그러나 증권업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증권업계는 자체헤지를 줄이고 백투백헤지를 늘리는 등 자율규제로 향후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금융당국을 설득했다.
당초 6월 발표 예정이었던 ELS 규제 대책은 아직까지 발표 계획이 잡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 환매중단과 이로 인한 사모펀드 전수조사 등으로 인해 금융당국이 ELS 대책까지 살필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대신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증권사 등이 보유한 미 국채 등 외화채권(외화RP)을 매입하는 외화 유동성 공급방안을 내놨다. 한은은 "코로나19 확산 등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국내 외환부문의 안정성 제고를 위한 새로운 정책수단을 확보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분기 ELS 마진콜로 인한 달러 부족 문제를 염두에 둔 설명이다. 증권사들도 외화자산을 확보를 위해 외화RP상품 확대에 나섰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LS 마진콜 당시 상황은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다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갔지만 ELS 발행규모를 자기자본 1배로 규제하는 엄격한 총량제가 재발방지를 위한 해답이 아니"면서 "증권업계 역시 외화자산 확보와 ELS 자체헤지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가지고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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