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가 진상 규명을 위한 경찰 수사를 촉구했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는 별개로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사실상 종결한 경찰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 시장 고소인 A씨 측 변호사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은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된 수사 및 조사 과정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인권을 회복하고 가해자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소인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해서 사건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경찰은 현재까지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했다.
특히 A씨에 대한 박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비난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사건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피해자 인권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왼쪽 세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2020.07.13 dlsgur9757@newspim.com |
경찰은 지난 10일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A씨의 고소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사실상 종결했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따르면 수사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게 돼있다.
공소권 없음은 공소를 할 권리가 없다는 말로, 피의자를 형사처분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범죄사실이 입증되지 않을 때 내리는 무혐의 결정과는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고소인의 2차 피해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처벌의 대상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를 종결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회적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처벌 여부와 별개로 진상 규명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이 된 박 시장의 명예가 달린 문제기 때문에 오히려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진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울러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로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이 소멸됐음에도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경우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수사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범인을 잡는 것 말고 진실 규명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며 "화성사건도 진술 하나만으로 재수사하는데 박 시장 성추행 의혹의 경우 피해자가 확실히 존재하고 증거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수사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반적인 성추행 사건 수사 절차 등에 비춰봤을 때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해자 일방의 진술만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경찰에서 수사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례적인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수사를 중단하거나 지속해야 한다는 관련 규정은 없다. 다만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소인이나 피의자가 사망하면 통상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종결된다. 혐의가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면 처벌해야 할 당사자가 사망한 만큼 더 이상의 형사절차 진행이 무의미하다는 취지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공소권 없음이면 수사를 종결한다"며 "수사의 실익이 없고 처벌할 수도 없으니 어려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다만 경찰은 A씨 측이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2차 가해에 대한 추가 고소장을 제출한 데 대해서는 "수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jun89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