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 월셋집에 사는 A씨는 최근 부동산 뉴스를 볼 때마다 혼란스럽다.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하는 임대차 3법이 통과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중 금리를 고려해 인상률을 낮춘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편에선 집주인이 월세를 매년 5%씩 인상할 권리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만약 집주인이 A씨에게 월세나 보증금을 매년 5%씩 올리자고 한다면 이를 거절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박병석 국회의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가결하고 있다. 2020.08.04 leehs@newspim.com |
◆매년 5%씩 인상 요구 '차임증감청구권'에 업계 '들썩'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이 발표되면서 부동산 업계가 연일 시끄럽다. 임대인들이 '차임증감청구권'을 행사해 임대차3법을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이 알려졌지만 이를 막을 규제 법안도 이미 발의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차임증감청구권'은 계약당사자가 월세나 보증금을 약정한 후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올리거나 내리도록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민법 제628조, 주택임대차보호법 제7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1조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권리며 임대사업자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임대인, 임차인 모두 행사할 수 있다.
예컨대 집주인이 재산세, 종부세 인상 때문에 '경제사정이 변동했다'는 점을 내세우면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상 요구가 가능해진다.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2+2)이 주어지면 임대인은 법에서 보장한 매년 임대료 5% 인상요구권(차임증감청구권)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복리로 계산하면 4년 만기시까지 총 15.7% 인상이 가능해진다.
다만 집주인이 차임증감청구권을 행사하려면 계약기간이 1년 단위여야 한다. 또는 계약기간이 2년 단위일 경우 계약서의 특약사항에 '1년 단위로 계약한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이번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는 '차임증감청구권'을 규제하는 별다른 조항은 없다. 차임증감청구권 행사를 막으려면 전월세상한제 적용 시점이 '계약 갱신' 뿐 아니라 '계약 기간 중에도 적용한다'는 시기를 정하고 있어야한다.
차임증감청구권을 행사하는 임대인이 늘어난다면 전월세상한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세입자일수록 집주인이 매년 임대료 5% 인상을 요구한다면 소송을 피하기위해 이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차임증감청구권을 막지 않았다는) 허점이 있는데 민주당에서는 이런 내용을 상세히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임대차 3법은 이처럼 허술한 상태에서 졸속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차임증감청구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자료=의안정보시스템] |
◆'차임증감청구권' 막는 법안…월세·보증금 인상률도 3.5% 그쳐
이 같은 상황을 염두해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주임법 일부개정안에는 '차임증감청구권'을 규제한 조항을 담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집주인은 1년마다 전세보증금을 올릴 수 없고 인상률도 현행 5%보다 낮은 3.5% 수준으로 제한된다.
해당 법안 제7조 2항에 따르면 차임(임대료) 등의 증액 청구는 약정한 차임에 한국은행에서 공시한 기준금리(0.5%)에 100분의 3(3%)을 더한 비율(이하 증액상한율)을 곱한 범위를 초과하지 못한다. 집주인이 월세나 보증금을 올릴 경우 기존 대비 3.5%까지만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오른다면 증액상한율도 올라서 임대료 상한 제한이 3.5%보다 높아진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은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증액상한율이 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법 조항에는 '월 임대료는 1년 이내 다시 증액청구를 하지 못하고, 그 밖의 임대료 등(전세보증금 등)는 2년 이내 다시 차임증액청구를 하지 못한다' 못박았다. 이번에 시행된 개정안에는 이 같은 조항을 두고 있지 않아 전세보증금을 1년마다 올릴 수 있지만 이대로 개정되면 2년이 지나야만 올릴 수 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새 임차인에게도 임대료 등 3.5% 상한 제한을 두는 내용이 들어있다. [자료=의안정보시스템] |
'전월세상한제'를 기존 임차인 뿐만 아니라 신규 임차인에게 적용하는 조항(제7조의 2)도 있다. 신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임차인도 기존 계약의 임대료 또는 보증금보다 3.5%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임대인이 4년(2+2)마다 신규 계약을 체결해 임대료가 대폭 오르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는 2회까지 가능해 최대 6년(2+2+2)까지 거주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의원의 법안은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않았지만 최근 분위기에 비춰 통과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 동안 당정은 신규 계약에 '5% 상한제' 적용을 두고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월세시장 동향을 주시하며 향후 사용할 카드로 남겨뒀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전월세상한제'의 부작용으로 4년(2+2) 후 임대료가 대폭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법안을 통과시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임대차 3법 보완과제와 관련해 "전월세 상한 5%를 모든 계약에 적용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규제, 규제, 규제...위헌 논란 키울 수 있어 '우려'
이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면 집주인의 '차임증감청구권' 행사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집주인이 세입자와 협의에 실패해 소송에 나서면 막대한 소송 비용과 재판에 걸리는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차임증감청구권 행사에 따른 임대료 인상폭(3.5%)을 감안하면 실익이 크지 않다.
임대차 3법의 위헌 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그나마 현행 개정안에서 '차임증감청구권' 행사가 유효하기 때문에 전월세상한제가 위헌 논란 중심에 서지 않을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차임증감청구권은 전월세상한제에 따른 재산권의 과도한 침해를 완화해주는 요소"라며 "집주인이 임대료를 올릴 이유가 있다면 차임증감청구권으로 (재산권 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돼서 임대차 3법이 위헌 논란을 빠져나갈 여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신설된 조항 7조의 2는 새 임차인에도 월세 또는 보증금의 3.5% 상한 제한을 두는 내용"이라며 "이 조항은 계약자유원칙을 정면 위반하고 있어서 헌법소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계약자유의 원칙이란 계약에 의한 법률관계형성은 각자의 자유에 맡겨지며, 법도 이를 승인한다는 원칙이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과 함께 근대 민법의 3대 원칙을 이룬다.
앞서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과 임대인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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