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국권침탈 직전 전해산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활약한 임장택 선생 등 351명이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는다.
13일 국가보훈처는 "건국훈장 152명(독립장 1명, 애국장 48명, 애족장 103명), 건국포장 29명, 대통령표창 170명 등 351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임장택 선생의 「수형인명부」. 밑줄 친 부분에 따르면, 1910년 당시 30세로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사진=국가보훈처] |
임장택 선생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08년부터 1909년까지 호남 일대에서 전해산 의병부대에 투신해 선봉장으로서 일인 처단과 의병투쟁을 위한 군수품 모집을 위해 활약하다 체포,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임장택 선생의 경우 수형인 명부 등 호남의병 정책연구용역 결과를 통해 유공자 포상이 이뤄지게 됐다.
박치은 선생 등 여성 독립유공자도 11명 포함됐다. 박치은 선생은 3·1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증산지회 재무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하다 체포돼 징역 10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때 박치은 선생의 노모와 형제자매 등 일가족이 체포돼 고초를 겪었는데, 모친을 도와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조력했던 장남 최창익 선생이 미결수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되자마자 22세의 나이에 순국하고 말았다. 최창익 선생께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박치은 선생 가족의 이야기는 매일신보 1920년 11월 14일자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매일신보 1920년 11월 14일자 기사. 박치은 선생이 1919년 8월부터 대한애국부인회 증산지회 재무부장으로 독립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사진=국가보훈처] |
보훈처에 따르면 이들 유공자에 대한 포상은 제75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 유관기관과 협업 체제를 통해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을 국민들이 기억·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만1220명, 건국포장 1360명, 대통령표창 3702명 등 총 1만6282명(여성 488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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